등록 : 2009.05.01 22:11
수정 : 2009.05.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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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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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체제 변환이나 정권 교체와 같은 거시적 변화를 가져온 힘은 영웅의 출현이나 개별 정책의 실패만이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그렇지만 완강한 구조적 변화에 대한 집권 세력의 무신경과 대중들의 지속적 요구에 대한 외면의 결과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총 13회에 걸친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과 지지자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2004년 4·15 총선 이후 5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정권 교체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 4·29 재보궐선거는 최근 상황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의 전조는 극심한 투표율 하락 현상이 역전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 40.8%(국회의원 재선거 5개 지역)는 지난 10년 동안 치러진 재보궐선거 투표율 가운데 2001년 10·25 선거의 41.9%에 다음가는 양호한 기록이다. 특히 30~40대 유권자들의 참여 증가가 투표율의 전반적인 상승을 가져왔다는 언론 보도(<한겨레> 5월1일치)는 주목할 만하다. 수도권과 진보정치 1번지 울산에서의 선거 결과는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투표용지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서 인근 투표소로 향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5 대 0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4·29 재보궐선거는 이명박 정부 심판론, 즉 반MB 정서의 직접적인 표출이었다. 이러한 반MB 정서는 여러 수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수도권과 진보 도시 울산에서는 ‘강남 천국, 서민 지옥’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귀족정치에 대한 계층·계급적 심판이었고, 경주에서는 오만과 독주의 ‘측근 정치, 형님 정치’에 대한 내부 이탈이었다.
셋째, 이번 선거가 진보개혁 진영에 희망적인 이유는 그것의 성과가 적전 분열에 기인한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승리의 정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연합 정치의 효과이다. 지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시민사회 진영과 진보정당, 민주당 사이에 느슨한 선거연합 형태의 생산적 역할분담이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막판 단일화에 성공한 조승수 후보는 울산 북구에서 49.2%를 얻어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승할 수 있었다.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합 정치를 가능하게 할 제도개혁 방안, 비교 우위 지역에서의 후보 연합, 진보정당 내부의 연합 공천과 정당 통합 등 다양한 수준의 연합 정치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편, 이번 선거는 한국 정당정치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전직 대통령 후보와 현직 당 대표가 소모적 논쟁 속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결핍을 보여주었다. 원칙 있는 타협 속에서 당의 화합과 정치력을 회복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과제는 반MB 연합의 정책과 가치, 인물을 채우는 일이다. 이러한 과제는 이중의 경로로 실천되어야 한다. 하나는 각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걸맞은 정책과 이념 개발에 매진하는, 즉 선의의 경쟁 방식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민생민주국민회의’와 같은 범연대기구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내부 갈등적 이슈들을 정리하고 복지사회와 같은 기본 가치와 전망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집권 여당에는 준엄한 경고를, 야당을 비롯한 대안 세력들에는 기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반응은 온전히 정치권의 몫이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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