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7 21:38
수정 : 2009.05.0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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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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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랜만에 고교 동창회를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동창회에 가니 우리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에 지정되지 않으면 3류 학교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난리났더라.”
고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넘은 동문들까지 긴장시키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정책은 새 정부 ‘고교 다양화 300 플랜’에서 시작되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교원 인사 등을 학교가 자유롭게 운영한다. 교육청 돈을 안 받는 조건으로 재단이 연간 2억원 안팎을 부담하며 등록금은 일반계 고교의 세배 이상이다. 결국 남편이 졸업한 그 학교는 자사고 허가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재단에 큰돈이 없는 그 고교가 자사고로 지정되어 동문들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을까?
강남 8학군의 대표적인 공립학교인 서울고등학교는 얼마 전 교육과학부로부터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받았다. 사교육 없는 학교란 사교육이 필요 없는 학교가 아니라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인 학교를 의미한다. 서울고 자체조사 결과 학부모들이 학생 일인당 75만원, 학교 전체가 한 달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돈이 11억원이나 된다. 그러나 공립고 교육의 모범을 보여 지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온 서울고가 학원교육으로 돌아선 것은 우울한 한국 교육의 단면이다. 사교육비 문제에 고심하는 정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를 자율학교로 전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자율학교는 교육과정, 교사 임용이 비교적 자유롭다. 고2부터 입시교육 혹은 인성교육에 ‘올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강남구가 ‘명문 고교’ 사업을 통해 ‘지역민이 긍지를 가진 학교’를 육성하겠다며 인문계 고교 16곳 중 5곳에 연 2억씩 4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강남구 관내에 수백억원을 쏟아부어 학교 교문, 방송실 시설 등을 줄기차게 고쳐봐야 가시적인 성과도 없고 지자체내 특목고가 하나도 없어 늘 불만이던 구민들을 달랜다며 명문고 사업을 계획, 공지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받은 것이다. 올가을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강남구 관내 16개 고교 중 사교육 없는 학교, 자율학교, 자립형 사립학교를 앞에 두고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입시교육에 올인하는 것은 다 똑같다.
평준화가 교육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공격에 대해 최근 헌법재판소는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고교 평준화 제도는 합헌이며, 교육기회의 균등한 제공과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고교 평준화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사립학교도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공교육 체계에 편입되어 있다’며 사립학교 선택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 정부는 자율형 사립이나 공립형 기숙학교가 존재하는 지방이 수능 성적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며 아전인수 격으로 학교 다양화 사업을 전개하고 선택이라는 명분 아래 학부모들을 표류시키고 있다. 학교 자율은 물론 중요하다. 재단에 돈이 있건 없건 공립이건 사립이건 학교 자율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돈 있는 학교만 자율을 보장한다는 점, 학교 자율이 입시 교육 자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 등록금이 비싸진다니 돈 있는 부모가 보내는 1부 사립 리그와 그렇지 못한 2부 공립 리그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인 것이다. 35년 전 고교 평준화 정책이 단 3개월 만에 전격 실시되어 미흡한 점이 많다면 그걸 고쳐야지 과거로 돌아가 고교 입시를 부활하고 고교 서열화 정책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은 학생 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고교 동문들까지 쫓길 뿐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김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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