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12 23:47
수정 : 2009.05.1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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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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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영철 대법관 사태에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직자의 재산 상태, 그 형성 및 증식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공직자의 윤리를 확보하기 위한 법이다.(법 제1조) 따라서 ‘재산 외의 사항’으로서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공직자의 윤리 확보에 관한 것은 공무원법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비록 대법원이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 규칙을 만들어 ‘법관이 관련된 비위 사건으로서 사안이 중대하여 대법원장이 부의한 사건’ 등을 윤리위가 심의 및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대법원 규칙은 상위법에 근거도 없는 제멋대로 규칙에 불과하다. 윤리위가 이렇듯 법률적 근거도 없는 짓을 하다 보니까, 대법원장에게 법관 징계법에도 없는 경고 또는 주의촉구를 하라고 비법(非法)적 건의를 한 것이다.
신 대법관은 이미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밝힌 것처럼 ‘재판 내용과 진행에 간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는 행위를 했다. 이는 법관 징계법의 징계 사유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라는 사람이 법관의 재판 독립을 앞장서서 짓밟아버린 것이다. 그 후 논공행상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그는 자신이 오매불망 고대하던 대법관의 자리를 꿰찼다.
헌법은 법관에게 검사보다 더 강한 정도의 신분보장을 해주고 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분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견책)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헌법의 의도는 법관의 신분보장을 강하게 해줌으로써 법관이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만 재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확고하게 보호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법관의 신분보장은 법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다.
법관들, 특히 신영철 대법관이 새겨야 할 것은 법관의 강한 신분보장에는 강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이다. 그 책임은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따른 책임, 검찰의 수사·소추와 법원의 재판에 따른 책임, 법관징계위원회의 징계에 따른 책임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엄중한 불문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법관의 자기책임과 법원의 자정력에 따르는 책임이다.
법관은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잣대로 사건을 바라보며, 사건 하나가 소송 당사자의 삶 자체를 파괴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있는가? 자괴감을 느끼면 물러나야 한다. 법원은 신분보장이라는 헌법의 보호막을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면책조항으로 악용하는 법관을 도태시켜야 한다.
국민은 대법관에 대한 경외감과 환상 속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대법관은 법에 관한 전문지식, 법관으로서의 품위와 양심,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 등 뭔가 다른 품성들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주는 경외감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경외감은 전관예우의 혜택을 가장 짜릿하게, 그것도 제도적으로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 전직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라는 것,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법관의 품격이나 사법권의 독립 또는 국민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대법관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면서 부질없는 환상으로 뒤바뀐다. 법관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국민의 시선이다.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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