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7 21:12
수정 : 2009.06.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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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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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와 더불어 시민들은 언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단체가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됐고, 문제 언론에 광고를 게재하는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문제가 있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매운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소비자 권리이다.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정보’를 파는 기업인 언론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불매운동으로 소비자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고주 불매운동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상적인 일로, 아예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미국의 법률 논문이나 판례를 살펴보면, 언론 소비자가 특정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벌이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헌법이 보장한 소비자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광고주 불매운동의 결과로 해당 언론이 사과하거나 논조를 바꾸는 일도 종종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소비자단체가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구글에서 ‘ad boycott’(광고주 불매운동)을 검색해 보면, 전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광고주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고주 불매운동은 미국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소비자 권리이기에, 피해를 입은 언론사의 대응은 기껏해야 불매운동 단체가 자사의 보도내용을 무단으로 인용했다는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는 정도이다. 그나마도 미국 법원은 광고주 불매운동의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즉, 미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광고주 불매운동은 합법이고, 당연한 소비자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광고주 불매운동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문제 언론에 광고를 중단하도록 광고주를 ‘협박’(threat)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광고주 불매운동은, 광고주가 광고를 중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궁극적으로 언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광고가 중단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광고주 불매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 이는 모든 소비자 운동이 마찬가지다. 실질적 영향력이 없다면, 어느 기업이 소비자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런데 2009년 현재 한국에서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에 대해 해당 기업의 고소 고발도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인지수사를 하고 있다. 특정 언론사와 기업에 대해서는 참으로 친절한 검찰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검찰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광고주 불매운동이 한창이었던 작년에도 검찰은, 광고주 불매운동은 미국에서도 불법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펼치며 시민단체 회원들을 구속했다. 이런 한국 검찰에 대해 미국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조롱조의 글을 올렸다. 한국 검찰의 행위는 좋게 봐주면 영어 실력 부족으로 미국의 판례를 잘못 해석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고의적으로 미국 판례를 왜곡한 것이라고.
법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 한국 검찰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상식적인 행동을 탄압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회에서 힘없고 권력 없는 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촛불을 드는 일뿐이다. 그러나 어린 꼬마의 손에 들린 촛불조차 기어이 꺼버리고야 마는 권력기관 앞에서, 국민들은 절망한다. 상식이 무시되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서민들만 고달프다.
전영우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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