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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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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MB)정권이 세종시 특별법 수정작업을 밀어붙이다가 당론 변경조차 어렵게 되자, 정권 측근들로부터 세종시 국민투표 발상이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헌법 72조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기로 한다. 세종시 수정이 국민투표 사항인가?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찬반논란 때문에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위협을 초래할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국민투표 결과 세종시 수정안이 가결되면, 어떤 법적 구속력을 갖는가? 국민투표에서 가결된다 하더라도, 국회가 국민투표의 결과에 맞게 세종시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헌법 45조는 국회의원에게 발언·표결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국민투표의 결과에 맞게 세종시 특별법 개정안에 찬성할 것을 강제할 수도 없다. 국민투표 결과 세종시 수정안이 가결되면, 정부는 세종시 특별법을 제정한 국회의 의사가 아니라 국민의 의사에 따라 세종시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가? 세종시 계획 수정의 효력은 국회가 세종시 특별법을 개정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지, 국민의 의사에 따라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투표에서의 가결만으로 정부가 세종시 계획을 수정할 수는 없다. 국민투표 결과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 그때부터 국회는 어떠한 수정도 할 수 없는가? 국민투표의 결과가 국회의 입법권을 강제할 수 없는 것처럼, 국회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더라도 자신의 의사대로 특별법을 개정할 수 있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현재의 사태는 ‘국가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헌법 72조를 들먹일 근거가 전혀 없다. 법치국가 원칙상 세종시 건설과 같은 국가정책은 정부가 계획하거나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집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 줘야 한다. 정책을 수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입법권은, 국민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국회의 전속적 권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종시 수정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더라도 국회가 세종시 특별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돼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 72조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신박물관에 안치되었어야 할 유신시대의 유물이다. 우리의 헌법사에서 그것은 독재자가 독재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써먹는 조항이다. 실제로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 47조의 국가중요정책 국민투표 조항을 근거로 유신헌법의 찬반과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켜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가결된 뒤 전개된 정치상황은 철권통치의 강화였다. 헌법 72조의 국민투표 조항은 이미 역사적 수명을 다한 조항이다.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헌법적 기능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헌법 72조의 헌법적 기능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서 입법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헌법 72조는 국민이 법률안을 발의하여 통과시킬 수 있는 국민발안 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엠비정권은 국민을 향해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세종시 문제도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라. 당론 변경을 하고, 국회에 개정 법률안을 제출해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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