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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8 19:29 수정 : 2010.03.28 19:29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금요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해군 함정 참사는 우리를 정신적 공황으로 몰아넣는다. 폭발 원인조차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상식과 이성은 마비된다. 오랜 군 경험을 자랑하는 해군 예비역들조차 자신들의 직관에 반하는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서만은 설명을 주저한다. 오직 처절한 통곡과 절규 속에 망자들의 한이 겹겹이 쌓이는 저 서해 북방한계선 일원의 비극적 역사가 깊어져가는 것이다.

사건이 터진 직후 청와대와 국방부가 ‘북한 연루설’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인명구조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사건은 자칫 잘못 처리하면 서해 일원의 군사적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켜 또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가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일단 그런 위험을 관리하면서 남북관계에 불똥이 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청와대의 위기관리는 생각해볼 점이 없지 않다.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연거푸 개최하고 전군과 공무원을 비상대기 시키고, 외국을 방문한 여당 대표가 급히 귀국하는 등 요란스러운 행보는 있는데, 정작 위기관리의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만약 현 상황이 위기라면 상황을 관리하는 대응의 절차와 원칙, 그리고 대국민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회의는 소집되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내용은 빈약해 보인다. 마침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대통령과 장관급 이하 주요 인사들 상당수가 병역면제자이거나 보충역 출신이고 위기관리 전문가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과연 전문가와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근원적으로 직시해야 할 사실이 있다. 얼마 전 공군 전투기가 추락하고 곧이어 육군 헬기가 추락할 당시만 해도 무언가 우리 군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은 막연했다. 그런데 이번에 물이 새서 정비를 받아야 할 함정이 기어이 출동했다가 침몰하는 연속된 사고를 보면 육해공군을 불문하고 관통되는 뿌리 깊은 병폐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바로 국방에서의 인본주의의 실종이다. 이미 고물이 된 노후장비를 도태시키지 않고 무리하게 운용함으로써 키워온 ‘내부 위험’이 생명을 위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명 주기가 지난 무기를 육해공군이 갖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무기의 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무기 수가 줄어들면 부대 수도 줄고 인력도 감축되어야 하기 때문에 각 군은 이를 금기시한다. 여기에서 적의 위협보다 내부의 위험이 더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더 큰 문제는 군의 수뇌부가 이미 있는 장비라도 제대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관심을 쏟지 못하고 더 새로운 무기를 사는 데 관심을 우선 집중하는 풍토다. 턱없이 인색하게 배정된 정비비와 열악한 정비인력은 무기의 가동률을 급속하게 저하시킨다. 그러면서도 제한된 예산을 더 새로운 값비싼 무기 획득 경쟁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 도입을 위해 디지털 육군, 전략 공군, 대양 해군이라는 우리 실정에 맞지도 않는 장밋빛 비전이 차고 넘쳐났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군대는 무기가 얼마나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느냐 하는 가동률이 바로 강한 군대를 측정하는 기준인데, 한국 군대는 무기 수를 가지고 강한 군대라고 말한다. 그러니 일단 숫자만 채우고 보자는 식으로 비전을 남발해온 그런 군대 운영이 아닌가?


사건의 조속한 진상규명과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군의 근원적 문제를 척결하는 국방개혁에도 눈을 떠야 한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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