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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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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싣기로 해 독도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불거지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양은냄비 끓듯이 대증요법으로 대응할 것인가? 역사를 왜곡해 가르치는 일본 문부성도 1차적으로 문제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한국 외교당국도 근본적으로 사고를 바꾸지 않고는 풀 수 없다. 독도문제는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니라,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문제이기도 하다. 1905년 이전까지 일본 막부 정부나 어떠한 일본인도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공식적·비공식적·역사적 문헌과 사료, 지도에도 그런 주장은 없다. 이처럼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일본도 인정했다. 그런데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 때부터 태도를 돌변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에 군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망류망을 설치해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패퇴시키고 승전했다. 독도의 군사 전략적 가치를 간파한 일본은 독도를 인근 시마네현 소속으로 즉시 강제 편입시켰다. 그러나 국제법상 무주물도 아닌 독도를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가 이렇게 선점 조치한 것은 불법이다. 어떻든 1905년 이후 일본은 독도 관련 역사문헌이나 지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도 일본은 독도 침탈 로비를 치밀하게 했다. 제2조 1항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이를 독도 영유권의 논거로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3대 논거인 고유영토설, 1905년 선점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1항은 모두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논거가 희박하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역대 우리 정부의 대처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와 영토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은 19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해양주권 선언’과 2006년 4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관계 특별담화문’이 고작이다. 특히 1965년 한-일 어업조약,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은 독도 영유권의 국제법적 논거를 훼손시켜, 일본의 적극적인 공세를 가져오게 한 빌미가 되었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어민 피해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우려하며 ‘조용한 외교’를 폈다. 이는 국제법상 묵인 효과를 유발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지 못했다. 신한일어업협정 체결과정에서도 일부 관료들이 결정적 실수를 했고, 이를 옹호하는 일부 관변 학자들이 외교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 국제법적·역사적 논거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일본이 부르는 ‘다케시마’로 통용되었다. 국회의 ‘일본 정부의 철회 결의’와 대통령의 실효적 지배 강화 지시는 환영한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일회성으로 끝나선 결코 안 된다. 정부 합동 독도영토관리위원회가 최근 경북도의 독도 실효적 지배 강화사업을 유보한 것도 한-일 외교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한 ‘조용한 외교’의 표본이다. 또 2008년 7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총리가 ‘(일본 교과서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고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당시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3월17일 법원에서 이 보도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영토영유권 판례는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와 대처가 항상 승소하여 왔다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조용한 외교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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