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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0 19:26 수정 : 2011.06.20 19:26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알지 못하는 곳에서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집요하다. 허언과 식언, 말바꾸기가 난무하는 우리 정치·행정판에서 전자주민증만큼 끈질기게 추진되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시작되었다가 2년 만에 예산낭비라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아 전면 백지화되었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틈만 생기면 좀비처럼 맹목적인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것이 행정안전부가 목하 추진중인 전자주민증 사업이다.

이 사업은 어느 면에서든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현행 주민증이 위조나 변조될 우려가 높아 이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주된 근거지만, 연간 500건도 안 되는 위·변조 사건에 대응하고자 국가재정만 5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낭비할 이유는 없다.(그나마도 청소년들이 성인 행세를 해보고자 위·변조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사실 전자신분증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는 물론 대테러작전에 전력을 다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조차 예산낭비 혹은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포기된 사업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전자적인 방식으로 신분을 증명한다고 해서 현재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더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전자칩 속에 담기게 되는 각종 개인정보로 인해 모든 국민들의 사생활이 침해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감시체제를 이룬다. 주민번호에서부터 열 손가락 지문까지 140여개나 되는 개인정보를 세세히 수집·관리하고 그것도 모자라 통장·이장의 확인을 거치는 등 물샐틈없는 감시망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모든 것에 연결될 수 있는 정보가 디지털 방식으로 담겨 있는 전자주민증의 위험은 더더욱 심하다. 그 정보는 한번 누출되면 그 순간 전세계에 확산되어 아무도 통제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이런저런 정보와 결합되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생활이 전혀 엉뚱하게 가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행정안전부는 각종의 보안장치를 달아 전자칩에서 개인정보를 빼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장담하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희망사항일 따름임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자칩에 담긴 개인정보가 무한가치를 가지는 한 그 정보를 빼내는 기술의 개발은 끝없는 욕망 대상이 된다. 현재의 기술 수준만 쳐다보는 행정안전부의 장담과는 달리, 가까운 미래의 인간 능력은 전자칩의 보안 따위는 손쉽게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뿐 아니다. 과거에는 조그만 상품의 유혹으로 설문지에 답하게 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하였다면, 이 전자주민증의 시대에는 판독기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빼낼 수 있게 된다. 위·변조나 절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성을 가장한 무차별적 정보수집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 거래나 할부 거래를 하는 등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을’의 입장에 서게 되는 순간 ‘갑’ 쪽에서는 전자주민증을 판독기에 갖다 댈 것을 요구하고 그 즉시 소비자의 모든 개인정보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런 ‘강요’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은 또다른 희극만 만든다. 불량한 상인들이 판독기를 통해 신분확인을 하는 척하면서 몰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자적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만큼 이를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그 법률은 집행 불능이거나 혹은 집행 곤란한 법률에 머무를 따름이다.

사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다 지적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를 모른 체하며 또다시 전자주민증을 들고나오는 행정안전부의 관료들이다. 철저한 감시체계로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여지없이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또다시 전자주민증으로 이 헌법을 휴지로 만들어버리고자 한다. 소중한 우리의 사생활을 권력과 이윤을 추구하는 세력들에게 헌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정안전부 관료들의 무모한 고집이 관철되는 순간,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알지 못하는 곳에서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몸서리치는 악몽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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