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4 19:40
수정 : 2011.06.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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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문학평론가·한국문학번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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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넓은 범주에는 연예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예술에서 발동된 한류는 결국 문학까지 움직일 때
그 전체가 수행된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K-POP)이 마침내 유럽 대륙에 상륙하였다. 소녀시대, 샤이니,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젊은 연예인들은 파리에 모여든 1만4천여 유럽 관중들을 열광시키고 ‘대~한민국’을 파리 하늘 높이 열창시켰다. <르 피가로>를 비롯한 현지의 유력 언론들은 일제히 “한류(韓流)가 파리를 점령하였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지금까지 아시아를 휩쓸었던 한류의 세계적 확산을 예고하였다. 티브이 화면에는 다이내믹하면서도 유연한 한국의 젊은 연예인들의 공연 모습과 더불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벽안(碧眼)의 젊은 남녀들 모습이 함께 클로즈업되었다. 정말이지 단군 이래 최초의 풍경 아닌가. 1960년대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이래 서양 연예인들의 방한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따라다니던 풍경의 역전!
확실히 한국인은 예능의 민족인 것 같다. 한국인의 예인기질, 혹은 ‘끼’는 토속신앙부터 발원하며, 오늘에 와서는 더 폭넓은 ‘신끼’를 발휘하면서 재능 있는 연예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이 오늘의 한류 주역이 되고 있으며, 일본·중국·동남아 등에서 우리 국가 브랜드 향상에 첨병이 되어왔다. 그러나 예술의 넓은 범주에는 연예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춤과 노래를 매개로 하는 케이팝처럼 대중과 일선에서 만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가장 뒤쪽에서 그 모든 것의 근본을 이루는 문학 분야도 있다. 활자와 인쇄매체를 매개로 하고 있는 책의 예술인 문학은 대중과의 접촉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그 대신 그 본질을 움직인다.
대중예술에서 발동된 한류는 결국 문학까지 움직일 때 그 전체가 수행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소중한 현상이다.
지난 11일에는 소설가 이호철씨가 주도하는 단편소설 페스티벌이 경기도의 한 숲속에서 열렸는데, 팔순의 이씨는 <우리네 ‘비손’과 저들네 ‘기도’>라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바로 이 ‘신끼’와 통하는 중요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북한에서 결핵 퇴치에 이바지하고 있는 재외 한인 목사의 헌신을 다루면서 “남북 양측 모든 성원이, 7천만이 하나같이 매일 뜨겁게 지극 정성으로 ‘비손’ 내지 ‘기도’를 하는 데 버릇 들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 ‘비손’과 ‘기도’가 어우러지는 ‘신끼’ 혹은 ‘영끼’를 소설의 결론으로 하고 있는 이 원로 작가는 문학을 포함한 모든 우리네 예술의 본원적인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잘 보여준다.
일체의 정치적·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오직 문학작품의 세계 진출에 진력하여 온 한국문학번역원은 이 같은 문학 한류의 교두보다. 올해로 창립 10돌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번역출간된 작품은 28개국 언어, 471종(2011년 5월 현재)인데, 이제야 바야흐르 세계와 만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론 작품의 번역인데, 보통 두 사람으로 구성된 한 팀이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료가 팀당 기껏 1600만원이다.(번역기간이 대체로 2년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박한 편이다.) 번역가 지망생들을 외국으로부터 모집하여 양성하는 프로그램, 한국문학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해외에서의 번역작품 독후감대회, 주요 20여개국과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 운영 등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사업에 소요되는 재정수요는 날로 폭증한다.
밖으로 뻗어야 살 수 있는 한국, 번역을 통한 세계와의 만남이 운명일 수밖에 없는 한국문학, 노벨문학상에 간절한 한국인, 이 모든 현실과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간을 만나고 있다. 문화가 새로운 산업콘텐츠로 바뀌고 있는 오늘날, 1% 문화예산 규모는 이미 비현실적이다. 적어도 그 갑절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점화된 한국문학의 불씨를 힘껏 부채질함으로써 문학을 기반으로 한 한국 문화의 에너지와 그 성과를 세계인과 공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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