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9 19:33
수정 : 2011.09.19 19:33
|
김기만 군산대·우석대 초빙교수 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
지난달 취임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전후 제95대 총리대신. 그에 앞선 간 나오토 총리는 15개월 재임했고, 그 앞의 세 총리는 1년씩 재임하는 단명 총리로 끝났다. 이러다 보니 <아사히신문>에 ‘일본에서도 2년 재임 총리를 보고 싶다’는 사설이 나오고, 너무 잦은 총리 교체를 안타까워하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문화부 장관이 또 바뀐다. 정병국 장관의 재임기간은 불과 7개월. 역대 문화부 장관(공보부·문공부·문광부·문체부·문체관광부 모두 포함) 48명 중에서 재임기간 6개월이었던 이규현 전 장관을 빼고는 가장 단명이다. 이 전 장관이 1979년 대통령 시해라는 격랑 속에 취임했다 이듬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소용돌이와 함께 물러났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정 장관의 재임기간은 사실상 가장 짧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문화부 장관 임기는 1년 남짓한 경우가 절대다수. 자리를 기다리는 측근들 챙기는 게 불가피해서인지 ‘1년짜리 장관’이 양산되었다. 이러니 4년을 재임한 김성진 전 장관이 참으로 특별해 보인다.
이와 대비되는 프랑스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장수 장관’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의 앙드레 말로 장관(1976년 사망),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의 자크 랑 장관(현 하원의원)은 각각 10년씩 문화부 장관으로 봉직했다. 한 사람은 문화대국 프랑스의 기초를 닦았고, 한 사람은 꽃을 피웠다.
<정복자> <인간의 조건>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앙드레 말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고, 스페인 내전 때는 민항공군 대장으로 반파시즘 전선에 참여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반나치 레지스탕스 대열에 가담했다. 1944년 알자스 전선에서 샤를 드골 장군을 만난 인연으로 그는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의 문화부 장관을 맡아 10년을 재임하며 문화대국 프랑스의 뼈대를 만들었다. 문화의 힘과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대통령의 지원 속에 효율적이고 강력한 문화행정으로 프랑스 문화의 큰 그림을 그렸다.
자크 랑은 특히 1989년 프랑스대혁명 200돌 기념행사를 총괄지휘하며 문화장관의 명성을 높였다. 루브르박물관 앞의 피라미드 조형물과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바스티유 감옥 터에 지은 오페라극장 등 ‘3대 문화작품’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이들 기념대작의 설계자나 주역들은 대부분 동양인 등 외국인이었다. ‘용광로’라 불리는 프랑스 문화의 진면목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자크 랑 장관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첫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정명훈을 발탁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도 적극적이어서 1993년엔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했고, 올해엔 사르코지 대통령을 설득했다. 지난 6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때도 그는 함께 왔다. 2009년 프랑스 대북특사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한 그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주연으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배우 겸 가수 멜리나 메르쿠리. 그는 1981년 그리스 문화부 장관이 되어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의 반환을 추진했다. 유럽문화도시 지정에 앞장섰고, 아테네가 첫 유럽문화도시 지정의 영예를 갖도록 했다. 아테네 중심가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타계 17년이 지났지만 국내외 참배객들이 적지 않다. 그리스 국민과 세계인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누구보다 그리스를 사랑했던 이 국민배우를 기리기 때문이지만, 장관 재임 6년간의 활동 또한 훌륭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한 부처 장관이 무려 6번까지 바뀌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러다 보니 프랑스의 과기부 장관은 우리나라 전임 과기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 정부에서도 벌써 세번째 문화부 장관이다. 특히 정병국 장관 임면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바쁘디바쁜 3선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겸직 장관을 시켜놓고 7개월 만에 방을 빼라는 거다. 대통령은 애초부터 그런 인사를 왜 하는가?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제 아래에서 프랑스 같은 10년 장수 장관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문화장관쯤은 보고 싶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제대로 된 문화부 장관 한번 나왔구나 싶었던 이어령 선생조차 2년을 채우지 못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말로, 랑, 메르쿠리를 그리워할 권리는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