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4 19:30
수정 : 2011.10.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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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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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도덕·경제·역사 과목에만 있는 집필기준은, 해당 교과서 집필 예정자라면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집필기준이 항목별 점수가 되어 검정기준이 되기 때문에, 용어 하나라도 잘못 쓰면 검정에서 탈락할 수 있다. 현안이 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도 그런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민주주의의 양 날개가 자유와 평등이다.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용어이지만, 근현대 세계 인류는 그 중간 어딘가로 균형을 잡으면서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자유와 평등의 두 요소가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어떤 비율로 들어가느냐는 그 국가의 민주주의 운영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에서도,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의 정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61년 12월7일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혁명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선언하고, 1963년 2월26일 제정된 공화당 강령 1조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고 하였다. 1950년대 양대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강 1조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확립’(자유당), ‘일체의 독재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한다’(민주당)로만 되어 있었다. 사실 특정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것은 충분히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중학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의 정강 용어를 핵심어로 해서 한국 현대사를 가르칠 순 없다.
역대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써 온 것은, 그것이 헌법정신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역대 헌법 어디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자구가 없다.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다. 1972년 유신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는, 1960년 4월혁명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동일한 용어이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당시 헌법개정안기초위원장 정헌주는 ‘자유스럽고 민주적인 사회질서와 정치질서’라고 하였다. 특정 정당의 정책에 따라 방임과 자율, 또는 계획과 통제가 가능한 시장경제질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에서 자유를 ‘리버럴’(liberal)로 쓰지 않고, ‘프리’(free)를 썼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독재정치로 막을 내린 나치즘에 대한 성찰의 일환으로 1949년 기본법을 만들었지만, 근현대에 면면히 흘러온 민주정신 발전의 역사만큼은 훼손하지 않고자 하는 배려였을 것이다.
1990년 헌법재판관들은, 국가보안법 7조 1항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하면서, 1960년 이래의 헌법정신과 달리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첨가하였다. 그 결과 헌법의 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 조항과 상충되어 버렸다. 2000년에 제정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2조 1항을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한 범죄 행위를 권위주의적 통치, 즉 독재 통치로 규정했다. 국가보안법과 민주화운동보상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례를 결합해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한 독재정부의 통치범죄에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문란케 한 범죄(?)가 추가된다. 그렇지만 역대 헌법과 법률에 등장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그 어느 용례도 민주주의로 해석될 뿐,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할 여지는 없다.
일부 좌익 성향의 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하고, 이념의 차이 때문이냐고 묻기도 한다. 조금 안타깝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의 이해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고력 함양도 하고 싶어 한다. 역사적 사고력의 핵심이 사료 비판 능력이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이 민주주의라는 주장에는 사료 비판 과정이 있었으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장에는 없었다. 학문과 정치만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역사학계에서 사료 비판을 거치지 않은 학자의 주장은 인정받기 어렵다. 중학 역사와 고등 한국사 집필기준 작성 책임을 맡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와 늦었지만 학문적 토론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아직 충분히 토론되지 않은 중학 역사 집필기준마저 일정에 쫓긴다는 구실로, 2011 역사교육과정에 이어 또다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초중등교육법 23조 2항이 위임한 역사 집필기준 발표 권한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검정교과서 시대의 좋은 역사교과서는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는 저작 환경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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