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1 19:01
수정 : 2013.07.1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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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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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착륙사고는 끔찍했다. 여객기의 불탄 동체와 부서진 잔해들을 보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살아서 탈출한 것이 놀랍다. 부상을 무릅쓰고 신속하게 대처한 승무원들의 헌신이 승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비상시 승객을 탈출시켜야 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승무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모범적이고 영웅적인 승무원들 덕분에 승무원의 주요 임무가 ‘기내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비상사고 발생시 승객 탈출’과 ‘평상시 기내 안전과 보안활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사고 수습과 사상자를 돌보는 데 온 힘을 쏟아도 부족한 판에 부상당한 승무원까지 회사 이미지 관리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 꼬리뼈가 부서져 앉을 수도 없는 승무원을 불러내어 단정하게 쪽찐 머리에 유니폼까지 차려입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들었다. 그 승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기자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과 카메라 세례가 아니라 안정적인 휴식과 적절한 치료였지만, 아시아나항공은 개의치 않았다.
승무원을 장식품이나 소모품으로 여기는 아시아나항공의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창사 이래 여승무원의 용모와 복장을 획일적으로 규제했고 특히 치마 유니폼만을 강요했다. ‘고급스러운 한국의 미’를 강조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머리부터 손톱, 발끝까지 일일이 검열받았고 쪽찐 머리 하나로만 통일해야 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강압적 규제를 폐기하고 머리를 자율화하기로 합의했지만 3500여명의 여승무원 중에서 오직 4명만이 쪽찐 머리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올해 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진정을 받아들여 치마 유니폼만 강제하는 것은 성차별이므로 바지를 허용하라고 했다. 회사는 짐짓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머리 자율화와 마찬가지로 승무원들에게 유형 무형의 압박을 가해 극히 일부만 바지 유니폼을 신청하는 데 그쳤다. 신입 승무원들에게는 아예 바지가 지급되지 않고, 바지가 있어도 막상 입으려면 커다란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용모와 복장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비상탈출과 안전, 보안활동 등 승무원들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 관하여 또 하나 놀란 것은 얼마 전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사장단이 정부에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을 파견업종으로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항공사의 핵심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을 파견업종으로 하겠다는 것은 노무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 아래 비행안전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파견 노동자들도 주어진 업무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비행안전을 궁극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신분은 결코 아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항공사에서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것이 비행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사고를 전하는 사진 속에 담긴 여승무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고 여객기에서 탈출한 부상자들을 앞에 둔 채 두 여승무원이 탈진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치마가 너덜너덜해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승객들의 신속하고 안전한 탈출에만 매달렸을 승무원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옷매무새를 알아채고 얼마나 당황스럽고 난처했을까. 이번 사고에서 아시아나항공이 깨쳐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승객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은 획일화된 용모나 복장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잘 훈련되어 절체절명의 순간에 승객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승무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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