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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4 19:20 수정 : 2013.11.14 19:20

이영식 중앙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최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세계 정신의학협회 연차회의’에 참석하고 왔다. 이 회의는 전세계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모여 정신건강·정신병리학·중독 등 100여개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 토론하는 학술 행사다. 여기서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게임중독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의가 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엘리아스 아부자우디 교수 등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 세 명은 인터넷과 게임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제발표를 했다. 우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인터넷이나 게임 문제에 대한 통일된 진단 기준이 없고, 현상에 대한 조사 방법에서도 통일된 기준이 없으며, 치료 방법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게임 문제를 ‘병’ 혹은 ‘장애’로 단정하고 살펴보기에는 섣부르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5월 출시된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매뉴얼 연구그룹 또한 마찬가지 입장을 보였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만으로는 정식 질병명으로 등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40개 이상의 논문을 살펴보면, 인터넷과 게임 문제는 도박장애·물질장애와 유사한 측면은 있으나 적용된 장애 기준이 서로 달라 장애 빈도가 연구자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진행 과정에 대한 연구도 미흡하다는 이유로 임상적 관심을 가지고 좀더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신중한 접근 방식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매뉴얼 연구그룹은 국내에서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게임 중독(addiction)이 아닌, 인터넷게임 장애(disorder)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인터넷 중독 혹은 게임 중독이란 용어가 과연 의학적으로 적절한 표현인지부터가 논의 대상인 셈이다. 특히 성장기 소아·청소년에 집중된 인터넷 게임 문제에 대해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소아·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문제를 알코올이나 마약·도박 같은 성인병과 같이 분류해 낙인찍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중하지 못하다. 30·40대에 호발하여 평생을 가는 알코올이나 도박중독과 달리 임상 경험상 인터넷 게임 문제는 가상세계를 동경하는 10대에 호발하지만 30대 이후 급격한 감소를 보인다. 또한 40대 이후까지 지속된다는 관찰이 없다. 곧 인터넷 게임 문제가 소아·청소년기 심리 발달 과정에 표출되는 이행기적 발달학적 현상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임 문제라며 병원을 찾아오는 소아·청소년들을 수년간 살펴보면 순수하게 게임의 문제인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학교 부적응, 부모와의 애착장애 현상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곧 게임이 1차적 원인이라기보다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출구 혹은 결과물이라는 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인터넷이나 게임 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이른바 중독법과 같이 법제화를 통해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통합 관리하는 식의 접근 방법은 신중하지 못하다. 소아·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문제는 법제화와 통합 관리를 논하기 이전에 좀더 충분하고 표준화된 진단 도구에 의한 빈도 조사, 성인기로의 추적조사, 장기간의 뇌 발달 변화에 대한 추적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실체를 밝혀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큰 가상세계 안에는 ‘중독’ 현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개념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연구는 훨씬 큰 범주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영식 중앙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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