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겨레>에 실린 ‘김민기와의 대담’을 읽던 중 문득 “복지가 그냥 퍼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이 문구를 대하는 순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매도한 이명박근혜 정부의 비정함과 단세포적 발상에 다시 한 번 쓴웃음과 한숨이 나왔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강자, 즉 가진 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아니 도리일 뿐 아니라 김민기의 말을 빌리면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다. 여기서 “숨표”란 수영을 하다 잠깐 물 위로 코를 내미는 순간에 쉬는 숨으로, 수영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다시 말해 이 숨이 없으면 수영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을 햇볕정책과 연결시키면 강자(남)가 강자의 위상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약자(북)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북쪽은 남쪽에 비해 약자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인도적 행위요, 우리의 존재, 즉 우리 민족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수정권의 말대로 설사 퍼주기라 한들 그것이 뭐 그리 나쁜 행위인가? 가진 자의 넘쳐나는 쌀독에서 가지지 못한 자의 빈 쌀독에 쌀을 조금 퍼주었다고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미국)에게 퍼주는 것은 미덕이고, 덜 가진 자에게 퍼주는 것은 악덕이란 말인가? 이명박근혜 정부는 지난 10년 북한 퍼주기의 대가가 핵무기 개발과 어뢰로 돌아왔고, 식량 퍼주기가 북쪽 군인들의 배만 채워줬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퍼주기는 안 된다는 것이다. 퍼주기 한 돈이 얼마나 무기 개발로 들어갔고, 퍼주기 한 식량이 인민군의 배를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쪽 인민들이 덜 굶주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인민들의 배를 채울 식량예산이 군사비 쪽으로 더 많이 전용되지 않았겠는가. 퍼주기가 아니라도 북쪽 정권은 미국이 봉쇄정책과 군사위협정책을 고수하는 한 어떤 방법으로든 재래식 무기의 약세를 핵무기 개발로 보완하려고 할 것이다. 북쪽의 인민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자매다. 우리와 똑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분단 40여년 만에 자주통일을 이뤘다. 주변 강대국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독 보수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의연하게 독일통일에 앞장을 섬으로써 평화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남북이 갈라진 지 어언 70년이 가까워오건만 통일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 봉쇄정책, 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대박’론으로는 결코 통일을 이룰 수 없다. 이 길은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의 길이 아니라 남과 북이 산산이 부서지는 쪽박의 길이다. 남과 북의 군홧발이 아닌 짚신과 고무신이 서로 만나 손과 손을 마주잡을 때 진정한 통일의 날은 올 것이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햇볕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대책 없는 퍼주기가 아니라 우리가 온전한 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다. 놀부의 고약한 심보가 아닌 흥부의 어진 마음, 즉 형제애를 가지고 북쪽을 대하면 북쪽도 호응해 올 것이고,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보면 진정한 통일대박도 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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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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