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학과들이 무너지고 있다. 직접적 이유는 인문학을 ‘산업화’하려는 생산자나 정책입안자들의 구상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대학 밖에선 인문학이 호황이다. 도대체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국내에서 인문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적 이유 중 하나는 인문학 개념과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일반적 정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좀 흡족하지 않다. 인문대학이라는 한글 간판 아래에는 영어로 ‘College of Humanities’가, 문과대학에는 ‘College of Liberal Arts’가 적혀 있다. 서양식 인문학의 근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Humanities 대학’은 언어학, 어문학, 철학, 예술학, 역사학, 심리학 그리고 멀리는 사회과학, 경제학까지, 이들 학문이 ‘인간(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전제하에 인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켜 구성한 단과대학이다. ‘Humanities’(인문학)는 르네상스 이래로 야만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고대의 예술과 사유양식을 재탄생시킨 ‘스투디아 후마니타스’(studia humanitas, 인간적 배움)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용으로는 ‘후마니타스’(인본)이고, 외적으로 이 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전어(그리스어, 라틴어)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인문학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게 고전어 교육이다. 유럽에서 후마니타스는 ‘인문학적 정신’과 같은 이념 구실을 했고, 학제로 연결시킨 예는 드물다. 1750년께 독일에서 발생한 신인본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대학 개념인 ‘가르치는 자들과 배우는 자들의 공동체’는 ‘학문의 총체’(universitas litterarum)로 바뀌었다. 후마니타스 정신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대학’은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의 소규모 종합대로, 대학 서열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든다. ‘리버럴 아츠’는 서양 고·중세 교육제도의 근간을 이루던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7개 ‘자유기술’(artes liberales) 전통에서 유래한다. 이 과목들은 철학, 신학, 법학, 의학을 공부하기 위한 필수교양 과목이었는데, 굳이 ‘자유기술’이라고 명명한 것은 ‘자유로운 인간 양성’이 교육 목표였기 때문이다. ‘리버럴 아츠’의 원조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소피스트인 ‘엘리스의 히피아스’이다. 그는 교육 목표를 ‘지식전수가 아니라, 논쟁의 무기를 제공하여 토론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두었다. 고전어, 고전작품, 철학, 역사, 수학, 물리, 천문학 등의 기초과목을 철저히 가르쳐 폭넓은 교양은 물론, 토론과 논쟁의 기술을 터득하고 자연과학에서는 기초를 튼튼히 하겠다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리버럴 아츠이다. 엘리트 교육의 숨은 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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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고려대 독일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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