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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3 17:47 수정 : 2007.08.23 17:47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한겨레프리즘

공공기관 감사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다. 웬만한 곳은 연봉이 억대가 넘는데다 책임질 일도 별로 없다. 눈치 없이 외유에 나섰다가 입방아에 오르는 일과 같은 불상사만 없다면 임기도 확실하게 보장된다. 한쪽 눈을 감고 대충 모르는 척 조용히 지내는 게 감사의 미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형식상 민간기관이면서 업무상으로는 공공성이 높은 사실상의 한 공공기관에 깐깐한 감사가 부임하면서 조직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대충 지나갔을 일들을 꼬장꼬장하게 파고들었다. 그동안 쓴 경비 내역을 꼼꼼히 따지면서 엉뚱하게 지출된 골프 비용, 유흥음식점 경비 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아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감사 눈에는 너무 거슬렸다. 몇 건은 변상하도록 하고, 룸살롱 접대 등 잘못된 관행은 없애도록 했다. 규정에 어긋나는 업무처리 방식도 원칙대로 잡아나갔다.

감사의 이런 태도는 처음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급 직원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던 크고 작은 비리들을 이번 기회에 일소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담긴 것들이었다. 감사도 신이 났다. 모처럼 ‘밥값’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감사의 이런 행동에 제동이 걸리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사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자 “관행상 이런 데까지 감사를 한 적이 없는데 뭘 들여다보려고 하느냐”는 반발이 한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감사를 벌여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당사자들은 한사코 혐의를 부인했다. 혐의 사실을 감추고자 회의 자료를 급조하고, 관련자들과 입을 맞추기도 했다. 기존의 임원들도 감사의 이런 태도를 마뜩잖아했다. “남의 돈 가지고 쓰는데 뭘 그리 꼬치꼬치 파고들려고 하느냐. 그냥 넘어가자.” 문제가 있다고 의심이 가는 직원을 징계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검찰에 진정을 했다. 감사에서 드러난 비리 혐의를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감사가 직원들의 비리 혐의를 적발해 내부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외부로 끌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진정을 한 뒤 경찰과 검찰 조사가 끝나기까지 반 년이 넘게 걸렸다. 결과는 감사의 완패였다. 주요 사안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검찰이 보기에 서류상 문제가 없는데다 사안 자체가 별로 크지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감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에 진정까지 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처지가 난감하게 된 것이다. 별 일도 아닌 것을 밖으로 끌고나가 평지풍파를 일으킨 문제 인물이 돼 버렸다. 임원들은 물론 자신에게 기대를 걸었던 직원들도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내부 직원 하나 징계도 못 하는 감사와 가까운 것처럼 비쳐서는 회사 생활하는 데 득될 게 없다는 월급쟁이의 생존본능이 발동된 것이리라.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 순간 조직에서 외면당하는 신세가 돼 있었다.

그는 요즘 자신이 살아온 60평생을 되돌아보고 있다. 남들처럼 ‘관행’을 적당히 묵인하며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닌가. 조그만 일에 자기가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가. 밤잠을 설쳐가며 몇 번을 되물어 봤지만 답은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비리 혐의에 대한 증빙 자료를 보강해 검찰에 항고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그의 ‘관행’과의 싸움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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