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1.11 21:57 수정 : 2008.11.11 21:57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10년 전쯤 좋은 병원을 찾았다. 그곳의 의사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물이나 주사제를 처방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왕진 가방을 들고 몸이 불편해 병원에 못 오는 환자 집을 찾았다. 그 병원 옆에 한의원도 생겼다. 한의사도 비슷했다. 침과 뜸을 주로 썼고, 보약을 원하는 환자에게 밥을 잘 챙겨 먹으면 된다고 설득했다. 약값도 무척 쌌다.

그곳 의사와 한의사는 질병 예방에 관심이 많았다. 올바른 식생활 습관과 운동법을 가르치는 데 열심이었다. 시골에서 여느 의사와 한의사의 절반 남짓한 급여를 받지만 환자를 대하는 그들의 얼굴은 늘 밝았다.

안성시에 있는 농민의원과 농민한의원 얘기다. 이들 의료기관은 1994년 뜻있는 의료인과 농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안성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세웠다.

시간이 지나자 이런 의료생협은 인천·안산·원주·대전·전주·서울 등 다른 지역에도 생겨났다. 안성 의료생협을 포함해 열두 곳이나 된다. 새로 설립을 모색하는 지역도 많다. 이들 의료생협은 가정 간호사제, 재가 요양기관, 노인 작업장 등을 만들어 지역민의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 한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기껏 네댓 명이 일하는 다른 1차 진료기관에 견줘 의료생협에서 일하는 이들의 수는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른다.

하지만, 올해 의료생협 확산에 큰 걸림돌이 생겼다. 유사 의료생협 때문이다. 의료인이 아니면서 병원을 운영하고 싶은 이들이 주로 만드는데, 설립을 주도한 이들 중 병원 사무장 출신이 많아 ‘사무장 병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탄생 배경이 의료생협과 달라 유사 의료생협은 질병 예방이나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서비스보다는 이윤 창출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런 이유로 유사 의료생협은 크게 돈이 되지 않는 1차 의료기관 대신 요양병원을 선호한다.

실제 최근 3년 동안 11곳의 의료생협 요양기관이 허위·부당 청구로 관계 기관에 적발됐으며, 지난 9월 부산의 한 의료생협은 이사회 개최, 결산 보고 등 최소한의 활동조차 하지 않아 인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진짜’ 의료생협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보건복지가족부가 적극적인 관리·감독에 나섰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유사 의료생협을 규제하기 위해 의료생협 의료기관의 진료 행위를 조합원으로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규제가 도리어 진짜 의료생협의 활동에 위협이 된다. 비조합원 진료를 막으면 의료생협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료생협이 가입비 1만원만 내면 보약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 조합 가입을 유도할 수도 없다. 유사 의료생협이라면 모를까 주민자치와 참여를 내건 의료생협으로서는 그런 편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안성·대전·원주 등 의료생협 7곳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조합원 아닌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와 함께 일자리 창출, 수익 사업을 통한 자립 등을 요구받고 있다. 현재 의료생협에 대한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의 요구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가 철저히 감독하면 유사 의료생협을 규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인력 부족으로 쉽지 않다. 방법은 있다. 양심적인 학자, 의료인,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관리감독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실용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진짜 의료생협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의료기관은 더욱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bokki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