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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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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기억력이 나빠서일까 이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보여준 건 짐 싸들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지난 정부가 잘못 길들여 놓은 저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건만 그 기준으로 보더라도 더 나빠졌지 좋아진 건 없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그동안 ‘유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삐라’가 뿌려지고 ‘역도’ 등 온갖 상소리가 오가면서 남북은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다.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하더니만 이쯤 되면 그야말로 통일부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생·공영은 결국 말뿐인 빛좋은 개살구 신세가 됐다. 상대가 들어줘야 상생이 되고 공영이 되는 것 아닌가. 비핵·개방 3000도 북이 문을 걸어 잠갔으니 오바마 미국 행정부 들어 비핵화가 진전된다 해도 북이 남쪽에 ‘개방’ 할지 의문이다. 정책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선전이나 구호로 전락한다.
다음달 8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 회담에서도 남북대화는 없을 것이다. 서로 얼굴 붉히는 장면이 없으면 다행일 것이다. 평양-서울이 막힌 이상 우린 워싱턴만 보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냉소적으로 들리겠지만, 다 지난 정부 탓이고 북의 잘못 때문이니 어쩌란 말인가? 기다리는 수밖에. 이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고 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정부 대책을 물으면 ‘때가 되면’이라고 말해 왔다.
그 말처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는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전략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 손발을 묶어 대책이 없다는 ‘속수무책’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전략이 되려면 북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상황을 준비하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두 가지 상황이 가능하다. 하나는 북 스스로 나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또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 등을 떠밀어 나올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기다리면 된다.
이 정부는 북이 받아만 먹고 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른바 퍼주기론이다. 북의 변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개방이 이 정부가 추진하려는 대북 정책의 목표다. 그럼 이제 퍼주지 않고 기다리면 북이 스스로 변할까? 그동안의 북의 태도로 볼 때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주던 걸 안 주고 굶어죽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나오거나,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이 망할 때가 돼야 문을 열려고 할 것이다. 기다림의 전략은 북의 식량난이 심각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적을수록 좋을 터이다. 북이 볼 때 ‘북한 붕괴론’의 변종이거나, 부시 시대의 체제 전환론과 다를 바 없다. 미국에 매달리는 건 김영삼 정부의 실책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악의 축’ 북한을 굴복시키려던 부시 대통령은 6년 만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생각을 고쳐먹었다. 답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햇볕과 바람의 이솝우화에 나와 있다. 이 대통령은 햇볕정책에서 옷을 벗은 건 남한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강경하게 밀어붙이다 핵실험 앞에 옷을 벗은 건 부시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은 없다”며 대화 문을 닫아버렸다. 이 정부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예컨대 개성공단 3통(통신·통행·통관) 문제를 북이 개선하지 않는데 왜 군 통신 자재·장비를 북에 주느냐고 막으려 했다.
왜 실패한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가.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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