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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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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1989년 9월 프랑스 상업위성 스포(SPOT) 2호가 북한의 영변 핵 시설 촬영사진을 공개하면서 시작된 북핵 게임은 이제 20년을 맞는다. 이 지루한 북핵 게임의 본질은 냉전 해체 이후 동북아의 세력 재편이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체제 생존에 몰린 북한은 핵 개발로 승부수를 던졌다. 절대적 열세에 있는 북한이 쓰는 전법은 중국 병법 36계의 하나인 ‘철로 만든 나무에 꽃을 피운다’라는 ‘철수개화’(鐵樹開花)이다. 철 나무에 꽃이 필 수 없는데도, 꽃이 핀 것처럼 상대에게 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전력이 열세인 쪽이 자신의 세력을 과장하며 상대를 제압하는 전법이다. 북한은 핵이라는 철 나무의 꽃을 만개시키며, 상대방이 피곤해져 전열이 흐트러지기를 기다리는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법을 취했다. 그래서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얻어내는, 즉 벽돌을 주고 옥을 취하는 ‘포전인옥’(抛塼引玉) 전법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지난 20년은 분명 북한이 이런 현란한 전법을 종횡무진 구사하는 ‘연환계’(連環計)로 게임을 주도하던 시기였다. 조지 부시 전 미국 정권은 ‘탈출구를 봉쇄하고 도둑을 잡는다’는 ‘관문착적’(關門捉賊)의 전법에 기초해, 봉쇄정책을 통해 북한을 잡으려다 제풀에 쓰러졌다. 그러자 북한은 다시 최근 로켓 발사 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게임을 마무리하려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을 경기장으로 불러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있다. 게임의 구도가 바뀌고 있다. 애초 이 게임에 참관자로 초청된 중국이 주도적인 플레이어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게임의 본질이 동북아지역의 세력 재편전임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은 북핵 게임에 싫증이 난데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에서의 게임이 더 급하다. 그래서 동북아 세력 재편에서 중국의 역할을 더 인정하고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뒤 미국 조야에서는 강온 양 파가 갈리나, 북한에 대한 중국 압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오바마 정권은 이미 미-일 동맹에 기초한 아시아 정책을 폈던 부시 정권과는 달리 미-중 협력에 입각한 아시아 정책으로 선회한 상태이다. 도널드 그로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포린 폴리시>에서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뒤늦은 비난 이상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며 “미국의 사활적 첫 조처는 베이징과의 안보관계 개선이다”라고 말했다. 존 매케인 미 공화당 대선후보의 아시아 정책 자문을 했던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 아시아국장조차 같은 잡지에서 “북한에 대한 열쇠는 언제나 중국으로부터의 압력이었다”며 “최선의 해답은 베이징으로부터 나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안을 마련하려고 중국 설득에 온 공력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6년 7월 북한의 로켓 발사 때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서 반대 입장을 보이다가 갑자기 찬성 쪽으로 돌아서며, 게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손님이 주인으로 바뀌는 ‘반객위주’(反客爲主) 전법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중 G2(주요 2개국) 체제가 조성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제 북핵 게임 주도권마저 잡으려 한다. 동북아 세력 재편을 이끌 북핵 게임에서 한국의 지렛대인 대북 영향력, 즉 남북관계는 언제 회복될 것인가? 한반도의 미래 설계는 마치 19세기 말처럼 주변 열강들의 몫으로 버려지고 있다.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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