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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05 21:40 수정 : 2009.05.06 17:29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캐나다의 한 소도시에 잠깐 머무를 때 국제앰네스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20대 특유의 사회참여 정신으로 무장하고, 대학 게시판의 전단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곳은 시내 교회의 작은 방이었다. 놀랍게도 할머니 예닐곱이 앰네스티 지부원의 전부였다. 할머니들은 활동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다음 활동을 논의했다. 미국 북서부의 한 교도소에 갇혀 있는 양심수 석방을 위해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고, 3주 뒤에는 앰네스티 사진전을 하자고, 할머니들은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돋보기 쓴 할머니들이 말이다. 차라리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미스 마플의 수다회가 더 어울렸으리라.

 며칠 뒤 대학 광장에서 서너 명의 학생이 캐나다군의 동티모르 파병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캐나다 국기가 불태워지는 것을 보며 ‘이게 뭥미(뭐냐)?’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는데, 내가 보기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집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미스 마플 수다회에 참석한 할머니들뿐이었다. 할머니들은 교회의 작은 방에 둘러앉아 느릿느릿한 말투로 “허 참! 왜 그런지” 하면서 양심수 석방을 탄원하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들의 나이는 50~60대, 그러니까 20대에 68혁명을 겪은 이른바 ‘68세대’였다. 68혁명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늙어서도 사회적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제로 캐나다와 미국의 시민단체에는 젊은이는 없고 늙은 할머니들만 나와 뜨개질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들었다.

 촛불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난 건 1년뿐인데, 10년의 세월은 흐른 것 같다. 지난해 5월, 부모 세대의 ‘욕망의 시스템 상자’에 갇혀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줄만 알았던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왔다. 우리가 그들을 ‘촛불 세대’로 호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자극받은 시민들은 촛불을 기억하고 1년 만에 다시 거리로 나왔다. 경찰은 그날 하루에만 100명을 넘게 연행했다. 그들이 허겁지겁 진압한 건 시위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저 자신을 자책했다”던 대통령의 말은 교묘한 ‘페인팅’이었는지, 지난해 여름의 촛불시위는 거리를 메운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몇몇 피디가 만든 허위방송에 전국민이 놀아난 사건으로 변해 있었다. 기억은 이렇게 천천히 윤색되고 진압된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 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이 했다는 이 말은 촛불을 악착같이 기억하려는 ‘촛불 세대’에 대한 헌사 같다.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을 삭제하면 우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는 긴 하루를 마치고 어두운 방바닥에 누우면 천장을 바라보며 적어도 10분은 뒤척인다. 그래야 인간의 삭막한 기억의 시냇물에 영혼이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따금 미래만을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옛것은 잊어버리고 미래만을 생각하자, 되돌아보지 말고 쉬지 말고 전진하자고. 하지만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다.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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