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6.23 19:46 수정 : 2009.06.23 19:46

노형석 대중문화팀장

일본 프로야구 마니아라면 누구나 규슈의 후쿠오카 돔을 기억할 것이다. 후쿠오카 연고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 선수가 원정경기에서 호쾌한 장타를 곧잘 날리는 곳이다. 하지만 1993년 돔구장이 지어진 배경에 문화재에 얽힌 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원래 후쿠오카 구장은 도심 시민공원 안 헤이와다이에 있었다. 1987년 구장 야외 관람석을 보수하다 외야 땅속에서 고대~중세 외국 사신 영빈관인 고로칸 유적터가 발견됐다. 놀랍게도 7~11세기 중국, 신라, 고려의 각종 도자기와 서아시아산 공예품들이 줄줄이 출토됐다. 대형 변소터와 뒤닦이용 막대까지 발굴되면서 구장터는 졸지에 동아시아 교류사와 화장실 고고학의 본산으로 떠올랐다. 시와 구단, 학계 쪽은 수년을 논의한 끝에 유적 보존과 구장 신축을 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로칸 터와 후쿠오카 돔 모두 현지의 대표적인 문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비슷한 사례는 일본 오사카의 시립 역사박물관에도 있다. 2001년 개관한 13층짜리 건물인 이 박물관은 건물터가 고대 궁궐 유적인 나니와 궁터의 일부였다. 설계 때부터 유적 파괴 논란이 들끓었다. 시 쪽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았다. 시민 대표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적정비계획위를 만들어 수년간 토론했다. 그 결과 건물이 깔고 앉을 궁터에 초석을 박지 않고 둘레에 특제 금속 파일을 박아 유적을 그대로 지하에 보존하는 얼개를 만들어냈다. 설계만 7년 이상 걸렸다. 하지만 지금 이 박물관은 오사카의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문화재 동네에서 일본의 문화유산 보존 사례로 꼭 입에 오르내리는 두 일화가 요즘 부쩍 머릿속을 맴돈다. 서울시가 디자인플라자를 짓기로 한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나온 막대한 규모의 조선 후기 생활 유적들을 토층째 통째로 떠내어 성곽 안쪽의 역사문화공원에 이전 전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발굴 이래 1만평 넘는 운동장 터 안에서 옛 한양성의 이간수문과 성곽터를 비롯해 조선 후기 군영인 하도감, 군수공방, 병사 숙소 등이 무더기 확인됐다. 하지만 이제 사적인 성곽과 수문, 일부 하도감 건물터를 제외한 다른 유적들은 이사를 가야 할 판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조건에도 규정한 것처럼 문화유산의 핵심은 장소성이다. 원형 복원을 아무리 강변해도 고유한 제자리를 떠나면, 역사 문화적 가치는 격감된다. 터 자체가 역사의 지층이기 때문이다. 구한말 일본에 반출됐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국립중앙박물관 홀에 박제처럼 전시된 경천사터 석탑이나, 강원도 원주에서 옮겨져 지금껏 경복궁 정원에서 망향의 설움을 되씹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의 처연한 모습에서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북관대첩비를 20년 가까이 걸린 국내 인사들의 노력 끝에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함경도 길주의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은 결실 또한 터의 가치에 대한 절박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대문운동장 터의 하도감, 공방 유적 발굴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형 도시 생활사 유적의 보존이라는 뜻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기회였다. 서울시나 일부 언론은 유적 이전 보존을 문화재 보존과 도시 개발이 ‘윈윈하는’ 선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건 일면에 불과한 수사일 뿐이다. 막개발로 점철된 서울의 도시 개발사 흐름에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무엇보다 후손들에게 문화재 보존의 자랑스런 기념탑을 남겨줄 절호의 기회를 우리는 스스로 차버렸다.

노형석 대중문화팀장nug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