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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02 21:29 수정 : 2009.07.02 21:29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유격조교 모자, 선글라스, 그리고 군복으로 치장한 한 남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은 지금 한국 사회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위험스럽게 넘나들고 있음을 웅변한다.

지난 24일 덕수궁 대한문 앞의 노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철거하고, 그의 영정을 ‘전리품’처럼 치켜든 한 우익단체 수장은 “쓰레기를 청소했다”며 “의지나 역량이 부족해 공권력이 완수 못한 것을 우리가 한 것”이라고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일갈했다. 그리고 “이제 정말 공권력에 의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공격해 오려는 적이 더 많다 보니 자위적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단다.

민병대의 논리이다. 공권력을 대신해 자신들이 나서겠다는 것이다. 민병대는 한 사회의 갈등과 파국의 징조이다.

이란의 대선 항의시위를 유혈로 물들인 이들은 바시지 민병대이다. 1995년 미국에서 벌어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사건의 주범 티머시 맥베이 등도 민병대를 결성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자행한 인종청소는 ‘자위를 위해 우리들이 나서겠다’는 민병대의 논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엔이 피난민 안전지대로 선포한 스레브레니차에는 1995년 7월 세르비아군의 점령 직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이 진공해, 라디슬라브 크르스티치의 지휘 아래 이슬람계 남성 8500명을 집단학살해 매장했다. 매장된 시신 중에는 어린 소년들도 있었다. 유엔의 유고전범재판소는 2차대전 후 처음으로 크르스티치 등에게 집단학살죄를 적용했다.

공권력을 대신해 나서는 이들은 군이나 경찰 등이 미덥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더 큰 문제는 권력층이 이들을 청부업자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부담스런 일들을 이들에게 떠넘기고, 국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만들어 버린다. 권력 대 국민의 문제를 국민 대 국민의 문제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은 애초 옛 유고연방의 세르비아계 엘리트들이 지휘하는 세르비아공화국 군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들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그 임무를 넘겼다. 어제까지 사라예보의 거리 카페에서 맥주와 차를 마시며 떠들던 이웃들은 각자의 민병대로 나뉘어 끔찍한 학살극을 벌였다.

한국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때 서북청년단과 땃벌떼 등 녹록지 않은 ‘민병대 전통’이 있다. 얼마 전부터 서울의 도심에는 군복을 입은 장년과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고엽제전우회, 특수임무수행자회 등 특수한 사정을 가진 전역자들이다. 이란의 바시지 민병대에서 보듯 체제를 건설했다거나 수호했다고 자부하는 불우한 퇴역군인들이 먼저 민병대의 주축이 된다. 그리고 갈등이 증폭되면, 사회에서 낙오한 청년과 중년들이 대거 가담한다. 보스니아의 민병대가 그랬다. 우리도 동네 우익 노인들의 혈기방장함 정도로 그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강화론을 내놓았다. 이틀 뒤 분향소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 갈등을 예감하고 내놓은 조처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치켜든 군복의 사진 밑에 달린 댓글도 적의와 전의, 더 나아가 살의가 느껴진다는 내용으로 강도가 높다. 군복들이 도심을 설치면서 공권력을 대신하고, 공권력은 팔짱을 끼고 있다면, 중도강화론은 권력 대 국민의 문제를 국민 대 국민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중도기만론’에 불과할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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