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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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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문자로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전하는 저작만 20여종이다. 이 저작들이 한국 불교의 뿌리와 몸통을 이루었다.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미국 뉴욕주립대)는 방대한 원효학을 관통하는 핵심어로 ‘화쟁’(和諍)을 꼽는다. 화쟁이란 말 그대로 싸움을 말리는 것이다. 다툼을 다스려 화평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원효의 <십문화쟁론> 서문은 먼저 그 싸움을 불교 내부의 문제로 제시한다. 석가모니 생전에는 뜻이 하나였는데, 석가모니 열반 후에 이론이 분분하여 비 쏟아지듯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 사상의 집안싸움을 다스리는 일이 급한데, 화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에 유·불·도 3교의 다툼이 만만찮았다. 원효는 이 3교에 두루 능통했다고 한다. 이 셋을 화해시키는 것이 화쟁론의 목표이기도 했다. 원효가 활동하던 시기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멸망시키고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 반도를 차지한 때(676)였다. 3국 백성의 갈등이 극심했다. 원효의 화쟁론은 이 정치적 혼란을 이겨내자는 뜻도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싸움을 말리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원효는 다툼의 두 당사자를 모두 부정하고 모두 긍정하는 ‘개비개시’(皆非皆是)를 말한다. 둘 다 틀렸고, 둘 다 맞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양쪽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고 다시 모두 긍정하려면, 양쪽을 잘 알아야 하며 그 양쪽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사태를 통찰해야 한다. 원효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 사람이 코를 만지며 코끼리가 뱀 같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배를 만지며 벽 같다고 한다. ‘눈 뜬 사람’이 보면 두 장님의 말이 모두 틀렸고, 동시에 모두 맞았다. 코끼리 코는 뱀 같고 배는 벽 같다. 이렇게 화쟁을 하려면 눈 뜬 사람이 되어 코끼리 전체를 한눈에 보아야 한다. 박성배 교수는 이 화쟁의 원리가 오늘날 남북대결시대를 극복해 가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북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이 시대에 누군가 화쟁자로 나서야 한다. 화쟁의 그 주체는 이 시대 민중일 수밖에 없다. 싸움을 말리려면 민중이 눈 뜬 존재여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눈 감은 줄 알았던 민중이 눈 뜨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빌미로 삼아 수구세력이 ‘한판 붙자’며 대결주의를 부추길 때 유권자는 그 선동질을 냉정히 무시했다. 그리하여 난파한 것은 천안함으로 득 보려 했던 자들이 만들어낸 ‘대결 정국’이었다. 민심은 표로써 천안함 정국을 침몰시켰다. 남북의 헛된 다툼을 물리치고 대긍정의 화해를 이끌어낼 주체는 눈 크게 뜬 국민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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