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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26 17:52 수정 : 2010.09.26 17:52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그 제보자는 정말 다급했던 모양이다. 보통 회사로 제보전화가 오면 접수한 사람이 꼼꼼히 적어 놓았다가 기자들에게 전자우편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그날은 제보가 오자마자 곧바로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는 점이 달랐다. 나중에 들어보니, 제보자는 회사 안내직원에게 꼭 담당기자를 만나고 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다급한 만큼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졌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마자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해서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때로는 두서없이 얘기를 꺼내는 통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무척 절박했다.

“대학 야구팀 감독들은 입학과 관련해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으면 목이 날아갑니다. 그래서 후원회장을 대신 내세워 돈을 받는 게 관행이지요.” 한 시간 남짓 계속된 그의 사정 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의 한 대학 야구특기생으로 입학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고교생 아들의 입학 길이 막혔습니다.” 이 학생의 아버지인 제보자는 기자에게 해묵은 야구계 체육특기생 선발 비리 문제를 꺼냈다.

대학 야구팀 후원회장한테서 “(아들이) 합격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은 지난 6월이었다. 당시 그의 아들은 다른 대학 세 곳에서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제보자는 애초 선택한 대학이 마음에 들어 다른 대학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들이 다니는 고교의 야구감독한테서 ‘대학 쪽에서 돈 얘기가 나온다’는 걸 전해들은 건 지난달 초였다. 고교 감독은 ‘대학 야구팀 후원회장한테 돈을 건네야 합격시켜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야구특기생으로 대학에 합격하려면 7000만~8000만원 정도를 써야 한다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정을 해 돈을 좀 깎았다고 한다.

하지만 6월부터 “합격했다”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해온 후원회장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 9월이 되자 “정원이 다 찼으니 입학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억울했다. 우선 돈을 써야만 합격할 수 있는 야구특기생 선발제도에 분통이 터졌다. 더구나 다른 대학 세 곳으로부터 받은 입학 제안마저 거절하고 선택한 대학이어서 더 화가 났다. 실제로 수시 1차 모집 기간에 체육특기자 원서를 써야 하는데, 감독이 안 된다고 했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대학 야구팀의 경우, 학생 선발 때 감독이 전권을 쥐고 있어 감독의 내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원서를 내봐야 소용이 없다.

기자는 제보자와 함께 고교야구 감독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제보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렵게 이뤄진 통화에서도 제보자는 “2~3일 더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무척 화가 났다. 결국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학교 쪽에 대한 협박 수단으로 기자를 이용한 게 아닌지 미심쩍었다. 그리고 수시모집이 끝난 뒤 그는 답답했는지 또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불만을 다시 토로했다. 하지만 취재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통화를 끝내고 생각했다. 한 통의 제보가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제보자는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고자 언론에 알린다. 하지만 어떤 제보자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모면해보고자 언론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는 어떤가. 기자는 제보 내용을 취재해 사회의 병폐와 비리를 들춰내고 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보이는 비리라도 취재하기 힘들 것 같으면 때로 제보를 외면하기도 한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자”며 자신과 타협한다. 제보자한테서 자기 허물을 본다.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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