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5 20:47
수정 : 2011.04.0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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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지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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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새 공항 입지선정 결과 발표를 사흘 앞두고 이른바 ‘중앙 언론들’이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남권은 발칵 뒤집혔다. 지역 언론들은 동남권 새 공항을 저지하려는 서울·수도권 언론들의 속내를 드러낸 보도라고 쏘아붙였다. 동시에 ‘절대로 그럴 리 없다’며 자기최면에 가까운 기사로 맞받았다. ‘만약 무산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권 새 공항은 없던 일이 됐다. 신공항 입지선정 평가위원회는 경제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두 후보지 모두 공항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놨다. 정부는 평가위원회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새 공항 계획을 접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언론은 ‘앞으로 공약은 신중하게 하라’고 정치권에 훈계했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듯 보인다.
결과 발표 뒤 오늘까지 영남권은 들끓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정서적 문제다. 이 지역은 현 정부를 향해 좀처럼 날을 세우는 일이 없었다. 포항뿐만 아니라 고향의 범주를 최대한 확장시켜 대구·경북 전체가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정권과 이 지역은 줄곧 ‘우리’였다. 자연스럽게 정부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힘을 실어줬다. 그런 정서는 동남권 새 공항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새 공항 입지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갖추지 못한 지역민들조차 막연하게 기대를 품었다. 옳지 못하지만, 이 지역에 흐르고 있는 지배적 정서다.
둘째 이유는 서울에 살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 품고 사는 미래 희망에 관한 것이다.
‘서울만의 대통령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지난 1일 대통령의 기자회견 뒤 대구의 한 지역신문이 뽑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현재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속 시원하게 드러낸 한 줄이었다. 새 공항의 입지를 따질 때 가덕도와 밀양 모두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속으로는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미래 가치까지 충분히 따져서 결과를 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역이 골고루 잘살아야 한다는 가치는 효율성과 경제성에 밀려났다. 국토 균형발전을 놓고 보더라도 새 공항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났다면 이처럼 반발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공항 입지를 정하는 데 국토 균형발전은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가적인 관점이라는 게 결국은 수도권이라는 특정 지역의 관점이라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해석이다.
‘우린데’라는 정서가 불러온 배신감과 서울·수도권 중심주의에 밀린 상대적 박탈감, 두 가지 이유는 묘하게도 이율배반적이다.
새 공항 백지화 발표 뒤 지역 곳곳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그 가운데 ‘다음 선거 때 보자, 표로 심판하겠다’고 벼르는 소리가 들린다. 선거를 치러보지 않아도 결과가 뻔한 지역에서 더 이상 당 이름만 보고 찍지 않겠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건 예사롭지 않다. 물론 ‘이 지역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못 미덥기도 하다. 새 공항 유치에 앞장섰던 조직들이 선거 때는 특정 정당 선거운동에 앞장설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지역이 우롱당했다고 핏대만 세우지 않고 지역을 홀대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옮겨가고 있는 건 분명 새로운 변화다. 으름장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역민은 몰라도 유권자는 무서운 법이다.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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