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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24 19:53 수정 : 2011.04.25 10:55

김은형 경제부 기자

1990년대 초반 대학에 다니면서 경험한 문화적 충격은 단연 서태지와 커트 코베인이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여진이 남아 있던 때라 교내 집회나 뒤풀이에서는 이른바 운동권 노래를 불렀지만 집에 돌아올 때 워크맨 이어폰에서는 <환상 속의 그대>나 커트 코베인이 이끌던 밴드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같은 곡이 흘러나왔다. 굳이 ‘대외적’ 취향과 ‘사적’ 관심사를 구분하거나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동아리방 같은 데서 서태지 이야기를 늘어놓기는 좀 어려웠고, 이따금 누군가의 가방에서 흘러나온 테이프 재킷을 보면 ‘어, 너도?’ 정도의 반응으로만 공통의 취향을 확인했다.

운동권 노래는 거의 잊어버리고 서태지와 커트 코베인의 곡 역시 자주 듣지 않게 된 2000년대 중반쯤 새삼 다시 충격을 받았다. 커트 코베인 평전을 읽으면서다. 이십대 중반,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로 남은 커트 코베인의 ‘인간적인’ 모습은 놀랍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예를 들어 커트 코베인은 인터뷰 때 공공연히 자신의 음악이 엠티브이나 라디오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냉혹한 쇼비즈니스계에 편입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매니저에게 왜 엠티브이의 방영 횟수가 적냐며 닦달하곤 했다고 한다. 또 평소 낙태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하나뿐인 여동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놀랍기는 했지만 배신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누군들 상충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실관계만 보자면 커트 코베인은 인기와 돈에 집착하면서 수많은 팬들 앞에서는 이런 것들에 초연한 듯 위선을 떤 셈이지만,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십대 초 “슈퍼스타가 될 거야”라고 떠들고 다닐 때부터 마음속에 키우던 꿈과, 막상 슈퍼스타가 된 뒤에는 철저히 돈과 함께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생태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모두 그를 움직인 동력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스타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모습에는 하나의 ‘노선’이 있어야 하고, 관습과 통념을 벗어난 로커의 이미지 뒤로 다른 수많은 욕망이 접혀 들어가 훗날 긴 후일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커트 코베인이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던 시기에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서태지가 다시 9시 뉴스에 등장했다. 단순한 팬덤 이상의 ‘특수관계’임을 자랑하던 20년 팬들마저 거짓말로 전락한 그의 신비주의 전략에 배신감을 표시한다. 스캔들이 터진 직후에는 서태지와 연관된 이지아 과거의 진실을 캐는 ‘이지아닷컴’이 등장해 검색어 1위를 달리더니 타블로의 학력 논란을 일으켰던 ‘타진요’를 따라한 ‘서진요-서태지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 여전히 서태지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서태지 본인의 공식적인 진실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나도 궁금하다. 그럼에도 진실의 공개가 기대되지는 않는다. 사생활 보호나 취향의 존중 차원에서가 아니다. 서태지가 공식 석상에 등장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 이야기는 다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유통·소비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제 결혼식을 올렸다 따위의 앙상한 사실 뒤에 십여년간 쌓인 진실의 대부분은 가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락프로그램에서 고백을 상품으로 제작하는 세상이 서태지에게 바라는 건 구질구질하고 때로 치사하기까지 한 진실보다 사랑·진심·상처 등의 근사한 단어들로 포장된 잘 빠진 상품이 아닐까. 초특급 스타와 베일에 싸였던 여배우의 비밀결혼 스캔들. 재미는 딱 여기까지다. 김은형 경제부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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