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형 경제부 기자
|
분노하기보다 구차함에 속앓이 비명을 질러라 ‘이기는 싸움’ 위해
몇달 전 한 외식업체의 기자간담회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있었다. 웬 대학에서 외식업체 간담회를 하는가 싶었는데 도착해보니 역시나 업체에서 자랑하고 싶어할 만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널찍한 카페형 매장이 대학 안에 입점해 있었다. 대형 외식업체들이 대학 캠퍼스 안으로 들어간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매장 안을 둘러보다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전시형 냉장고 안에 일렬로 서 있는 흑맥주 ‘기네스’였다. 깜짝 놀랐다. 직장생활을 십년 넘게 한 지금도 맥줏집에 가면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다가 대체로 “음… 나는… 기네, 아니 아니 그냥 카스!(또는 맥스)”라는 레퍼토리를 반복하게 만드는 바로 그 맥주가 아닌가.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보니 값도 여느 맥줏집 메뉴판에서 보는 가격과 비슷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돌아오며 지금 대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돈을 버는 지금도 선뜻 사먹기 망설여지는 고가의 음식을 학교 다니면서부터 보며 ‘먹고 싶다’는 욕망과 ‘먹을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했다면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가 다양하게 정해지면서 동창이나 친구들의 사는 모습도 천차만별로 바뀌었다. 일이 바빠서, 아이 키우느라 시간 내기 힘들어서 등의 이유로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도 있지만 때로는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멀어진 친구도 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궁색하다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을 딱히 가지고 싶어한 적도 없건만, 값비싼 명품에 골프여행 운운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됐다. 불편한데다 서로 관심사도 다르니 연락이 뜸해질밖에. 당당히 소신을 가지고 살면 되지 왜 위축되냐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위로도 격려도 되지 않는 지루한 훈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2000원짜리 밥 사먹으면서도 얼마든 대학생활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말해봤자 1만원짜리 맥주와 2만원짜리 음식 메뉴판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명품이나 골프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다.
|
대학교 안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윤운식 기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