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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7 19:09 수정 : 2011.08.07 19:09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가진 자들의 탐욕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는
없는 자들의 고통과
부의 폭력적 재편 불러

자본주의를 발흥시킨 대서양이 이제 거대한 빚잔치의 바다가 됐다. 전후 현대 자본주의의 설계자이자 수호자인 미국이 일개 신용평가회사에 의해 그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 부채위기의 핵심은 그 빚을 줄이고 갚는 데 합의를 못하기 때문이다. 빚 문제 해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편의를 더 봐줘서, 회생 능력을 키워 빚을 갚게 하거나, 아니면 채무자를 아예 파산시키는 등 빚잔치를 통해 빚을 청산하는 거다.

두 방법 모두 채권자·채무자 공히 고통과 손해를 보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채무자는 능력 이상으로 빚을 꾼 대가로, 채권자는 잘못된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다. 빚에 관한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이런 원칙을 모른 척하면서, 엉뚱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며 해법을 찾으려 한다.

유럽 부채위기의 진원은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이었다. 올해 초부터 논의된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에서 핵심은 민간투자자들의 고통분담이었다. 추가 구제금융이란 채무자인 그리스의 편의를 더 봐줘서, 회생 능력을 키워 빚을 갚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빚쟁이들이 꿔준 돈을 일부 탕감하는 등 조건을 완화하거나 더 돈을 꿔줘야 한다. 빚쟁이, 즉 민간 대형 투자자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어떠한 형식이라도 민간투자자들의 비자발적 고통분담은 ‘그리스의 디폴트’라며 그들이 이해를 대변했다.

그럼, 추가 구제금융을 위한 돈은 어디서 나오나? 독일 등 유럽의 부국과 국제통화기금이 돈을 내라는 거다. 자신들의 투자 손실을 독일 납세자와 국제통화기금에 돈을 낸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들의 돈으로 보전하라는 것이다.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에는 민간투자자들의 고통분담이 포함됐으나, 그 실현성이 불투명한데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질질 끄는 동안 부채위기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도 전염됐다.

미국 정부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발생한 국가부채 위기의 해법도 단순하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거다. 그런데 최근 타결된 해법은 지출만 줄이는 걸로 나왔다. 국가수입, 즉 세금의 확충은 공화당 티파티 계열 의원들의 극렬한 반발로 얘기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이번에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에스앤피도 증세 부재를 그 이유로 들었다. 게다가 지출 삭감의 절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사회보장비 축소이다. 밥 굶으면서 빚 갚으란 얘기이다. 밥 굶으면, 일할 능력이 없어지고, 빚도 못 갚는다.

미국 부채위기를 발생시킨 지출 확대는 부시 행정부와 레이건 행정부 시절 감세와 군비 확장 등 전비 확대로 발생했다. 국가부채 확대의 수혜자는 부유층과 대기업이었다. 따지고 보면,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 부의 편중의 결과가 미국 국가부채 위기이다. 역대 금융위기를 연구한 <이번엔 다르다>를 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금융위기를 빨리 종식하는 유일한 길은 채권자로부터 채무자로 부를 이전해, 부의 대차대조표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금융위기는 가진 자들의 탐욕으로 발생해, 없는 자들의 고통과 더욱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부의 폭력적 재편 과정으로 귀결됐다.

서울시의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 아니 ‘오세훈 투표’가 치러진다. 유권자의 3분의 1이 참가해 투표가 성립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리로 귀결될 거다. 보수층들은 한국의 복지병과 미국과 유럽 같은 국가 부채위기를 막는 이정표라고 환호할 거다. 이런 그들만의 투표는 미국과 유럽의 부채위기가 아이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아가는 부의 편중에서 시작됐다는 불편한 진실에 더욱 눈을 감게 할 거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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