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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5 19:16 수정 : 2011.09.25 19:16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안철수 지지 세력이 정치에서 비켜서면,
안철수는 또 다른 이건희가 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은 최근 인도를 들끓게 한 한 사회운동가의 단식투쟁과 비슷하다.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가 이를 질타하는 신선한 ‘재야인사’의 부상으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향 마을 랄레간시디를 친환경으로 부흥시킨 반빈곤·반부패 활동가 안나 하자레(74)는 지난 4월과 8월 두 차례의 단식투쟁으로 공직자들의 부패를 감시·조사하는 강력한 반부패 독립기구인 ‘시민옴부즈맨’(록팔) 설치를 관철했다. 그의 단식은 델리를 비롯한 인도 전역의 주요 대도시에서 시위와 촛불 밤샘농성을 불렀다.

지난 8월21일 두 소녀의 도움으로 코코넛 꿀차를 마시는 그의 단식 중단 장면은 전 인도에 생중계됐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영광의 순간이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가 부패에서 벗어나 법과 헌법을 준수하며 전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만들었다.” 하자레의 단식 종료의 변과 함께, 12억의 인도는 다시 조용하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면 큰 수확이다. 그럼 하자레의 단식은 카스트와 빈부격차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포장한 인도에 시민사회의 출현과 중산층에 기댄 실질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인 것인가?

종교와 민족, 혹은 이념과 지역에 기댄 정치운동만이 무성하던 인도에서 ‘반부정부패’를 기치로 전국적인 운동이 일어난 것은 인도 현대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단식운동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 아닐 수도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따먹은 인도 중산층, 혹은 중산층의 가능성을 본 이들의 자기만족적 허위의식의 표출일 수도 있다.

이번 운동은 철저히 정치권에 초점이 맞춰졌다. 부정부패의 상대편인 경제권 등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 6월 바바 람데브라는 요가 운동가가 해외계좌에 숨겨진 검은돈 조사를 촉구하며 단식하자, 정부는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인도 최대 신문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관련 법은 부패 정치인의 검은돈과 사회주의 성향 인도의 부당한 고율 세금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돈을 국외로 이동시키는 기업인들의 검은돈의 차이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언론은 하자레의 단식을 전국에 생중계할 정도로 열광했으나, 람데브의 단식에 침묵과 냉소로 응답했다. 하자레 단식을 지지하는 시위는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고용 불안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두고서는 ‘교통 혼잡과 사회 혼란’을 초래한 정치권 무능으로 축소했다. 작가이자 언론인인 마누 조세프는 <뉴욕 타임스>에 ‘부패에 대한 인도의 선택적 분노’라는 기고에서 “인도 정치인의 최고 덕목은 그들이 당신을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라며 “인도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아니라 자신들을 부패하고 저열한 정치인들로부터 착취받는다고 생각하며 도덕적 자신감을 끌어낸다”고 지적했다.

안철수가 보여주는 ‘배려하는 기업문화’와 재벌체제 비판은 정치권만 질타한 인도 단식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고, 이상하다. 마침표가 없다는, 끝없는 도돌이표 같은 느낌이다. 안철수 현상이 현재까지 가져온 최대 성과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배척이고 혐오이다. 그 이상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결국 정치운동으로, 정치권으로 수렴돼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며, 안철수는, 그리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새로운 세력’은 거기서 비켜서야 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한때 ‘기업은 이류, 정부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한 재벌 회장의 말에 열광했다. 정치와 정부를 3~4류로 만든 재벌에는 침묵했다. 그 침묵에 대한 각성이 안철수 현상일 수도 있다. 때문에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치에서 비켜선다면, 아마 안철수는 다른 종류의 이건희가 될 수도 있다. 정치만을 혐오해, 정치적 무기력을 더 부를 수 있다는 거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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