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3 19:33
수정 : 2011.10.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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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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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사저 문제는 퇴임 대통령
처우라는 숙제를 또 던지고 있다
한국 정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 때문이다. 퇴임 대통령 처우라는 숙제를 또 던지고 있다. 국고로 물타기해서 사저 구입 비용을 낮춘 행위 등은 ‘범죄 구성이 완료된 행위’이다.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법원에 가야 할 사안임을 부인 못한다. 이미 야권은 내곡동 사저 관련자들을 고발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또 열렸다.
“우리 모두가 역할을 한 미국의 비극이 있습니다. 이는 계속될 수 있고, 누군가가 종지부를 찍어야만 합니다. 나는 나만이 이를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다면 해야만 한다고 결론냈습니다. … 리처드 닉슨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기까지 많은 세월을 거쳐야 할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 긴 지체와 소송의 기간 동안 험악한 격정들이 다시 분출되고, 우리 국민들의 의견은 양극화될 것입니다. …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리처드 닉슨의 운명이 아니라… 이 위대한 나라의 당면 미래입니다. … 나의 양심은 나에게 명확하고 확실히 말합니다. 이미 접어진 책의 한 장을 계속 여는 악몽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양심은 대통령으로서 나만이 이 책을 굳게 닫고 봉할 헌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에 이어 미국 대통령에 오른 제럴드 포드는 취임 한달 만에 닉슨에게 전면적 사면 조처를 취했다. 절친한 친구인 공보비서가 사임하는 등 내부 반발도 극심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밥 우드워드는 닉슨이 비서실장인 알렉산더 헤이그를 포드에게 보내, 사면을 조건으로 사임하겠다고, 즉 사면하면 대통령직을 물려주겠다는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76년 대선에서 포드가 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사면 때문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어쨌든 포드는 정치적으로 불리한 선택을 감내했다. 하지만 포드는 이 조처로 2001년 케네디 재단이 주는 ‘용기있는 인물 상’을 받았고, 당시 포드를 비난했던 정적인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그의 용기와 조국에 대한 헌신이 우리로 하여금 워터게이트 비극을 뒤로하고 치유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고 극찬했다.
퇴임 뒤 포드는 사면은 유죄를 전제하고, 사면 수락은 유죄를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대법원의 한 판례가 당시 사면의 논리였다고 말했다. 닉슨은 애초 이 사면을 받는 데 주저했다. 포드가 유죄를 인정하는 성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닉슨은 “나는 워터게이트를 처리하는 데 더 단호하고 정직하게 하지 못한 잘못을 범했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나의 의도와 행동은 고의적으로 나의 사익을 취한 불법이었다”고 인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그의 죽음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피멍을 남겼다. 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명백히 한 일이다. 그래서 그가 다시 끄집어낸, 정치보복에 이은 정치갈등의 확산은 내곡동 사건을 계기로 이제 악순환이란 궤도로 올라탈 채비를 하고 있다. 그의 업보이다. 하지만 그가 1987년 이후 어느 권력자보다도 심하게 전임자를 추달한 인물이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기회이다.
닉슨에 대한 사면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진실에 대한 규명과 그 진실을 ‘범죄자 닉슨’이 인정하게 한 국민적 압력 때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수사당국이 나설 필요는 없고, 그래서는 일을 그르치는 거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이 대통령 본인의 진솔한 조처이다. 악순환은 이 대통령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 끊어야 한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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