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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5 19:41 수정 : 2012.01.15 19:41

조일준 국제부 기자

아랍의 민중은
새 어젠다를 원했다
2012년 한국도
새 어젠다를 원한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월14일, 튀니지의 독재자였던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75) 대통령 일가는 분노한 민심에 쫓겨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쳤다. 거리에서 과일을 팔던 스물일곱살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권력의 횡포와 부패에 항의해 분신했다가 끝내 숨진 지 열흘째, 강고했던 24년 독재의 철벽이 민중 시위로 무너져내렸다.

부아지지가 댕긴 불씨는 삽시간에 아랍 전역의 들불로 번졌다.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 예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바레인…. 2월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84)의 32년 독재가 막을 내렸다. 리비아에선 3월19일 나토군이 유엔 결의를 근거로 무력개입에 나서면서 내전이 본격화했다.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10월 반군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세계사에 굵은 획을 새긴 ‘아랍의 봄’은 아랍의 각성, 아랍의 봉기, 아랍 혁명으로도 불린다. 나라마다 사태의 경과도 다르다. 그러나 본질은 한 가지, 자유와 인권을 향한 열망이다. 풀어 말하자면, 아랍의 봄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공할 국가 폭력과 압제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려 나선 현재진행형 ‘피플 파워’다.

민주주의, 경제정의, 시민적 권리, 표현의 자유 등은 근대국가의 핵심 가치다. 이를 위해 지난 1년 새 아랍 민중 수천 수만 명이 목숨을 바쳤다. 시리아 5000여명, 이집트 840여명, 튀니지 220여명, 또 그 밖의 나라들. 리비아 과도정부는 내전 중 최소 3만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카다피의 가족도 풍비박산이 났다. 미국 독립선언문(1776년)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 남긴 말은 상투적 문구가 됐지만 여전히 진리다.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로 생기를 찾는다.”

숫자와 통계는 많은 것을 단순화하고 감수성을 메마르게 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에서 사망자 수는 생명의 가치와 반비례한다. 아랍 민주화운동 1년 동안 어림잡아 3만7000여명이 숨졌다! 그 목숨들 하나하나에 애틋한 사연들이 있을 터이다. 부디 저세상에선 차별도 억압도 없는 안식을 누리길 기원한다.

지난해 2월, 이집트 혁명의 진앙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며칠간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기 전이라 상황은 엄중했다. 열한살 딸과 함께 광장 시위에 나온 한 30대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집트 국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답변에 정신이 번쩍했다. “정책을 바꾸고 내각을 개편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사고를 한다. 우리는 새 대통령이 아니라 새로운 어젠다를 원한다!”

모든 독재자들은 ‘자신=정부=국가’라는 오만과 착각 속에 산다. 그러나 민중은 몸으로 안다, 정부(정권)가 곧 국가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정부가 좋은 정부인지도.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플라톤이 저서 <국가>(폴리테이아)에서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같은 윤리적 문제를 집요하게 붙들었던 것도 이데아에 가까운 공동체를 꿈꿨기 때문이다.

튀니지 주재 미국대사관이 2009년 7월 워싱턴에 보낸 외교전문은 18개월 뒤 일어날 재스민 혁명의 묵시록 같다. “튀니지는 경제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표현·집회의 자유가 거의 없으며 인권 문제가 심각한 경찰국가다. 정권은 민중들과의 접촉이 없다. 집권층은 국내외의 비판을 용인하지 않으며 부패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참 닮았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인권과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행을 물리도록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어젠다’가 필요하다.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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