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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0 19:30 수정 : 2013.01.21 09:38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대선을 전후해서 인터넷상의 진보, 보수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베·디시 등이 보수로, 엠엘비파크·에스엘알클럽·82쿡닷컴·소울드레서 등이 진보로 분류된다. 재미있는 것은, 보수 쪽은 남초만 가득한 반면 진보 쪽은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가 엇비슷해 성비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간에는 종종 정치적 연대도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성비상으로도 균형 잡힌 진보커뮤니티들에서 이 동네 용어로 ‘파이어’되는 특정 사안들이 있다. 수백개의 댓글이 붙고, 격전이 벌어진다. 데이트시 남녀간 비용 분담, 군복무 가산점 문제 등 주로 양성평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남자 쪽 이야기들은 이런 식이다. 어차피 버는 돈 부족한 건 마찬가진데 왜 데이트 비용 대부분을 남성이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반반씩 분담하고 있다는 여자들 알고 보면 찻값만 내는 정도다, 자동차가 없으면 여성들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차를 살 수밖에 없다, 경차는 없느니만 못하다, 직장 초년생이 웬 쏘나타냐 어른들은 욕하지만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군복무 가산점이 안 된다면 여자도 군대 가라 등등.

조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대선 결과 앞에서 멘붕에 빠지던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참 찌질하다. 그런데 안쓰럽다. 데이트 비용 정도면 애교 수준이라고 넘어가겠지만, 결혼비용 문제가 되면 사정이 정말 진지하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사회에선 여자 쪽에서 혼수와 예단을, 남자 쪽에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치솟는 집값, 전셋값에 남자 쪽의 부담은 이제 인내의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다.

남자 혼자서 전셋값 감당은 턱도 없으니 결국 남자 부모의 부담이다. 자연스레 혼인을 매개로 한 자산의 조기 상속이 새로운 사회적 풍속이 되고 있다. 아들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서 근사하게 새출발을 하고 싶다. 이건 여자 앞에서 기죽고 싶지 않은 심리 이전에 현실적인 자산 상속의 경제학 문제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에서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 안전하게 출발한 사람과 외로이 자신의 노력에만 기대야 하는 사람 간의 차이는 좁혀지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2월 2040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양극화가 심각한 분야로 부동산 등 자산 쪽이 29%로 가장 높았다. 자산은 노력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것, 세습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출발이 다르면 더 이상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격차사회’, 개인의 노력에 의한 업적지위보다 부모의 후광에 의한 귀속지위가 훨씬 위력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앞의 조사에서 2040세대의 78.8%는 우리 사회를 부모의 후광이 절대적인 ‘폐쇄적 사회’로 진단했다. 20대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혹한 현실 앞에서 20대에게 결혼을 통한 부의 세습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부러운 것이 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성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금이 가면서 소득 재분배가 중요한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다. 복지, 소득 재분배, 유효수요 창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복지경제의 선순환도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은 소득의 양극화 이면에 자산의 양극화가 이미 강력히 똬리를 틀고 있다.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기회의 평등’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이 같은 구조에서 20대들은 생존을 위해 부모의 경제력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위선적이고 ‘찌질’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이들을 욕할 수 있으랴.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o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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