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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4 19:41 수정 : 2013.05.14 22:33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기업 입장에서 가장 관리하기 고약한 게 ‘평판 리스크’다. 계약이 파기되거나,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거나, 환율이나 금리가 급변하는 것 등은 어느 정도 예측과 통제,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평판 리스크는 언제 어떻게 터져 어디까지 갈지 도통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핵심인데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객관적인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최근 임직원의 진상짓 때문에 머리를 조아린 기업들이 여럿 있는데, 그 리스트에 청와대가 ‘윤창중 스캔들’로 이름을 올렸다. 아직 진행형이긴 하나,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을 한번 들여다보자.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는 위기 식별과 초기 대응이다. 어떤 사안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방미 수행단은 피해 여성과 문화원 직원이 ‘호텔 방문을 잠그고 울부짖는’ 상황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현지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뒤엔 윤씨를 귀국 조처하는 것으로 갈음하려 했다. 적법한 프로세스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끼칠 악영향을 더 우려한 때문이다. 윤씨 개인의 돌출적 행동쯤으로 판단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윤씨의 행위는 경미한 성추행이 아니라 의도적인 성폭력 미수 혐의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중대범죄자를 도피시킨 것으로 판명난다면, 참으로 낯부끄러운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둘째는 ‘투명성’이다. 그중 핵심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사고 대응 매뉴얼은 통상 이렇다. 내부 사고가 나면 본사 차원에서 임원급을 책임자로 임시 조사단을 꾸린다. 책임자와 일선 직원 등 관련자들은 따로따로 조사하는 게 상식이다. 현업에서는 질책과 책임을 우려해 사실관계를 최대한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할 경우엔 숨김없이 알리는 게 원칙이다. 괜히 수위를 조절했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아는 건 세상이 다 아는 것’이란 게 요즘 대기업들의 인식이다.

대통령의 국외 방문지에서 벌어진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대목의 청와대 대응은 빵점에 가깝다. 사건 발생 이후 피해 여성과 문화원 직원, 현지 경찰 등을 상대로 우리 쪽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노력한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가해자인 윤씨의 입에만 의존한 탓에, 윤씨가 진술을 번복하자 추잡한 진실공방을 벌이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가장 중요한 건 사전 예방이다. 잠재적 위험 요인들을 미리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고는 항상 징후가 있게 마련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가 보험사고를 분석한 경험칙이다. 대형 사고는 갑자기 일어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경미한 유사 사고가 29차례 있었고, 유사 징후는 300차례나 감지됐다는 것이다. 윤씨는 평판 조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불가론이 들끓었던 인물이다.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평가와 조언에도 대통령이 직권으로 발탁한 케이스다. 이미 예고된 ‘윤창중 리스크’를 대통령 스스로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리스크 관리의 마지막 단계는 사후 조처다. 영리한 기업들은 여론의 기대나 예상보다 한 차원 높은 대응책을 내놓으려 한다. ‘그쯤 하면 됐네’라는 우호적 여론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참모회의에서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이나 며칠째 홍보수석 경질을 놓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역시 수준 이상의 사후 조처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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