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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2 19:26 수정 : 2013.07.02 19:26

안창현 사회2부 수도권팀장

서울시 관악구의회는 지난 5월 두 건의 조례를 제정했다. ‘새마을운동조직 지원 조례’와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 및 지원 조례’라는 이른바 관변단체 지원 조례다. 5월 말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8개 구가 이런 조례를 제정했다고 한다.

나라 전체가 국가정보원과 북방한계선(NLL)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마당에 구의회 조례는 ‘작은 일’일 수 있다. 이들 조례는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 등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울 중구가 박정희기념공원을 새로 짓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만간 새마을운동의 녹색 깃발이 관공서들에서 펄럭일 수도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따른 변화일 것이다.

이미 2000년에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이 제정된 상황에서 뒤늦게 조례를 제정했다는 점에서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정부의 공익활동을 대행하는 단체한테 사업의 적절성 등을 심사한 뒤 사업비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새마을운동본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등 3개 관변단체에 대한 개별적 지원법은 10여년 전에 ‘불필요한 법률’이 돼버린 셈이다. 더구나 이들 지원법은 국가가 심사도 없이 사업비는 물론 운영비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와의 심각한 불균형이다. 또 민간단체는 재정의 독립성이 기본일 텐데, 국가가 직접 운영비까지 주는 건 ‘어용단체를 통한 시민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한국자유총연맹 육성법이 1953년 제정된 한국반공연맹법에 뿌리를 두고 있고, 나머지 두 육성법은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정비된 것이니,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왜 이런 관변단체 사업에 동참할까? ‘행동하는 어르신들’인 어버이연합은 어이없는 폭력성이 문제지만, 나름 확신에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좌파 일각에선 저소득·저학력층 유권자의 우파 지지를 ‘계급 배반 투표’라고 딱지 붙인다. 과연 이게 전부일까?

<거리로 나온 넷우익>은 일본 청년들 일부가 재일동포를 저열한 방식으로 공격하고 있는 현상을 짚었다. 정치적·경제적 위기 속에서 불안과 불만이 쌓였고, ‘일본 국민’이라고 자임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이겨내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1930년대 독일의 노동자와 중산층이 나치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속감을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한 사회의 우경화는 사회적 절망의 표현이고, 우파는 이를 활용할 뿐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들을 묶어 세우지 못하는 등 지극히 무능력했다.

또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미국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으로 ‘워싱턴 정치’가 흑인 등 정치적 약자와 괴리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 민주당조차 중산층 이상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만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2000년 미국 대선에선 전체 투표 가능 인구의 49.3%만 투표했다. 우리나라의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이 골목의 작은 정치를 놔두고 ‘여의도 정치’에만 매달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번달 1일로 민선 5기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가 출범한 지 3년이 됐다. 관변단체 지원 조례 제정이 보여주듯, 이미 작은 정치는 발동이 걸렸다. 어르신들은 관변단체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세상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도 듣는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 게 아니라, 한쪽에서 내민 손을 붙잡았던 것 아닐까. 반면 진보진영은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문만 열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저학력층 유권자들은 먹고사느라 바쁘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여력이 거의 없다.

안창현 사회2부 수도권팀장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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