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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0 18:30 수정 : 2013.08.20 18:30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촛불민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 조작, 정치 개입 의혹에 분노해 6월 말 대학생 30여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8월에 이르러 수만명 수준으로 확산되었다. 고등학생에서 교수,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각계의 시국선언도 끊이지 않는다.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디오피니언의 8월 정례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55.1%는 국정원 사태를 ‘국정원·경찰이 대선에 개입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집회와 비교하면 미적지근하다. 발랄한 촛불소녀들도, 쌍코·쏘울드레스 등 ‘배운녀자’들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아직까지 촛불의 주축은 지식인들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고관여층으로 보인다. 그 많던 2008년의 발랄했던 촛불대중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2008년과 2013년을 둘러싼 구조적 환경의 차이를 무시하기 힘들다. 살인적인 무더위라는 악조건과 공정성을 상실한 방송의 여파가 적지 않다. 2008년에는 피디수첩 등 방송 보도가 촛불정국의 도화선이 되었다면 지금은 방송이 앞장서 촛불의 존재를 밀어내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명백한 책임 주체가 있었던 2008년과 달리 2013년에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위임과 책임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전임 이명박 정부 시기 발생한 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아무리 위중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대상과, 책임의 내용이 모호할 때 대중들이 직접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촛불 이후가 모호하다. 대안이 되어야 할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태가 국민들의 주권을 어떻게 침해했는지, 누가 이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상황규정도, 메시지도 주지 못하고 있다. 국정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의 수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무대책으로 끌려가는 민주당을 믿고 이 뜨거운 날에 촛불을 들기는 쉽지 않다.

반면 국정원 사태와 촛불에 임하는 박근혜 정부의 대응 전략은 치밀하다 못해 치졸하다. 불리한 것에는 침묵하고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책임에 대해서는 정치적 다툼으로 문제를 돌리면서 거리를 둔다. 야당의 대통령 사과 요구에 대해, 정작 대통령은 “국회는 소모적 논쟁을 그치고 민생에 앞장서 달라”며 국회를 정쟁과 갈등의 공간으로 ‘타자화’한다. 자연스럽게 의회 혐오와 정치 불신이 커지고 정치의 공간은 축소된다. 실제 8월9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응답은 8%에 불과했다. 축소된 정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행정부와 검찰이다.

16일, 19일 두 차례 열린 국정원 사태 관련 국회 청문회는 정치권의 직무 유기, 국민 무시, 그리고 태만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라는 진실을 덮기 위해 선서 거부와 가림막, 노골적인 위증, 그리고 지역감정 자극까지 총동원되었다.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덮고자 하는 진실의 무게가 클수록 은폐하기 위한 거짓의 강도도 세다는 사실을. 그동안 신중하고 긴 호흡으로 국정조사 과정을 지켜본 다수의 국민들은 청문회를 통해 은폐하고자 했던 진실의 실체에 또렷이 다가선 듯하다. 아울러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세력이 누구인지도 말이다.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박 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더 무거워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감당할 수 있을 때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무게에 치이기 전에 말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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