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16 18:42
수정 : 2014.02.16 18:42
마리우스의 부모는 성생활이 순탄했다.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형제들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마리우스는 죽었다. 그의 유전자는 너무 흔했다. 한마디로, 그는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 복지뿐 아니라 동물 복지에서도 앞서간다고 알려진 나라, 덴마크의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일주일 전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지닌 두 살짜리 기린이 총에 맞아 죽었다. 사육사들은 마리우스를 죽인 뒤 어린이들이 섞여 있는 관람객 앞에서 3시간 동안 사체의 뼈와 살을 추려 사자에게 먹였다.
신기한 점은, 비난 여론이 하늘을 찌르는 와중에도 동물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 또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마리우스 공개 처형식’ 찬성론자들은 거침없이 주장한다. “코펜하겐 동물원은 유전자 다양성을 위해 근친교배를 금지하는 유럽협회의 동물교배 프로그램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랐다. 마리우스의 흔한 유전자는 근친교배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생식을 금지시켜야 한다. 공간이 한정된 동물원들은 번식이 불가능한 기린까지 기를 여력이 없다. 안락사가 불가피했다.” 이들은 쏟아지는 질문들에 조목조목 답한다. 다른 곳에 보낼 순 없었나? “마리우스를 받아주겠다고 나선 영국의 동물원엔 이미 마리우스와 피를 나눈 기린이 살고 있다. 동물원에 여분의 공간이 있다면 이는 유전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기린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인에게 판매한다면 서커스단이나 거리동물원처럼 더욱 열악한 곳으로 다시 팔려갈 위험이 있다.” 중절수술을 시킨다면? “그러려면 진정제 주사를 놓아야 한다. 기린의 경우엔 진정제를 맞다 쓰러지면 목이 부러져 죽을 수 있다. 또 지금도 가둬놓고 살게 하는데 생식이라는 본능적 행동까지 빼앗을 순 없다.” 그렇다고 굳이 사자 먹이로 줄 필요까지 있나? “야생 기린들은 병에 걸려 죽고 사자에 물려 죽고 굶주려 죽는 게 다반사다. 관람객들은 이번에 야생동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종 보존을 명분으로 다른 생명의 죽음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가? 햇볕과 바람을 쐬며 마리우스가 느꼈을 법한 행복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코펜하겐 동물원이 홍보 극대화를 위해 일부러 잔인한 행사를 벌인 건 아닐까?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대학 실험실에선 희귀한 동물을 기증받으면 전문가·학생들을 불러 공개 해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학술적인 목적 때문이지 일반인들에게 구경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육식의 잔인함을 가르치기 위해 굳이 도축장을 견학시켜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리우스 잔혹극은 동물원의 현실에 대해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일하는 한 수의사는 안락사 기준이 엄격한 유럽 동물원과 아무런 규정이 없는 한국 동물원을 비교했다. “한국에선 동물들을 비좁은 공간에 방치해 영역싸움을 벌이다 죽어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이 더 잔인한가? 우리나라에서도 가죽이 붙어 있는 고기와 단단한 뼈를 씹어야 하는 맹수들에게 사체를 주기도 한다.”
마리우스의 부고가 전해진 뒤, 덴마크의 다른 동물원에서도 마리우스와 비슷한 이유로 또다른 기린을 죽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가 나왔다. 애꿎게도, 이번 기린 역시 이름이 마리우스였다. 다행히 이 동물원이 죽이지 않겠다고 밝혀 상황이 수습됐으나, 앞서 ‘투명한’ 절차를 거쳐 처형된 마리우스가 없었더라면 두번째 마리우스는 주목받지 못한 채 죽었을지 모른다. 마리우스의 죽음은 되묻는다. 동물원에서 어떤 고통을 받다 죽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동물들에 대해 생각해봤냐고. 이들의 죽음에 대해 분개해본 적 있냐고.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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