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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30 18:41 수정 : 2014.03.30 18:41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연설이 주목받은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연설 때문일 게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베를린 연설을 디딤돌 삼아 그해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처럼, 박 대통령의 연설도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이 같을 순 없다. 14년 전엔 금강산 관광이 이미 시작됐고 남북간 민간경협의 물꼬가 열리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북쪽에 ‘정상회담을 하자’고 운도 떼어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관계가 불투명하다. 지난달 이 정부 들어 첫 남북 고위급 접촉을 했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했지만, 다시 험악한 말이 오가고 있다.

연설 내용의 간극은 더 넓어 보인다. 베를린 연설에는 구체적인 대북 지원책이 별로 없다. ‘북한을 돕겠다’는 큰 원칙만 우뚝하다. 대신 북한의 흡수통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 화해·협력, 공존·공영이 우선이고 “통일은 그다음 문제”라고 했다. 말미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또 한번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어떤가? ‘장밋빛’ 대북 지원책이 빼곡하다. ‘복합농촌단지’나 ‘모자 패키지’ 같은 미세한 사업까지 거론한 대목에서는 숨막히는 ‘깨알 리더십’이 느껴진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 역지사지의 정신은 없다. 일방적 제안만 있고, ‘통일 대박’ 그날의 화려한 무지개만 있다. 지원책도 대체로 ‘공짜’가 아니다. 먼저 북한이 ‘5·24 조치’의 장벽을 넘기 위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전까지는 포기할 수 없다는 핵무기도 내려놓아야 한다.

차이는 연설 장소 선택에서부터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베를린이 동서냉전 붕괴와 통독의 상징이라면, 드레스덴은 동독의 공산지배체제를 무너뜨린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곳이다. 이처럼 또렷이 대비되는 메시지가 또 있을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속단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북한이 28일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합의를 서슴없이 줴버리는 것이 박근혜식 ‘신뢰 조성’의 특기인가”라며 결기를 세우고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규탄에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한 대목에선 어두운 그림자가 예감된다.

그래도 박 대통령은 운이 좋은 것 같다. 현실적으로 북한한텐 당장 남한을 배제하고 선택할 대안이 별로 없다. 최근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돌파구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한-미-일 3각 대북압박 공조가 쉽게 균열날 것 같지는 않다. 중국과의 관계도 예전만 못하다. ‘남쪽과 잘 지내라’는 요구는 더 노골적이다. 밖으로 통하려면 남쪽을 거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인 정세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적어도 북한이 붕괴하거나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동북아의 세력 균형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이 정말 미국과 ‘맞짱’ 뜰 만한 힘을 갖추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도 중국 입장에서 ‘순망치한’으로 표현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대신 중국이 국제사회의 행동 규범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시늉이라도 할까? 그때도 북한이 남쪽이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목매야 하는 환경일까?

어쩌면 북한은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북한 체제의 내구성은 과거 90년대 말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입증된 바 있다. 시간이 꼭 우리 편만은 아닐 수 있다. ‘통일 대박’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순풍일 때 돛을 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드레스덴 연설은 더 아쉽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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