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9.02 18:44 수정 : 2014.09.02 18:44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제가 알기로 모든 의대에서는 졸업식 때나 의사면허를 받을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합니다. 국회의장님께서 졸업하신 학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의장님께서는 이미 선서 내용을 알겠지만, 우리 신문 독자들 가운데 혹시 모르는 분도 계실 수 있어 두 문장만 옮깁니다. 하나는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입니다. 이 정도 보고 나시면 제가 무슨 얘기를 꺼낼지 이미 짐작하실 것입니다.

우선 여쭤보겠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가운데 40일 넘게 단식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이보라 서울시동부병원 내과 선생님이 진료한 것은 의사로서 잘못된 일입니까? 잘 아시다시피 ‘유민 아빠’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며 46일 동안이나 단식을 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이 선생님의 진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혹은 의사의 윤리에 혹시 어긋난 일인가요? 그리고 그 진료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정치 성향이나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따져야 하는 문제인가요? 의장님께서 봉생병원에서 일할 때 환자의 정치 성향을 따져서 진료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5선 국회의원을 하시고 국회의장에도 오르신 분이 의사로서 살면서 환자를 차별해 진료했느냐고 여쭤보는 것 자체가 실례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듣자 하니 국회에 계시는 어떤 의원은 이 선생님의 노조 경력이나 당적 등을 조회하는 공문을 서울시에 보냈다고 합니다. 앞서 한 언론은 이 선생님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며 ‘유민 아빠’를 진료한 것에도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민간병원에 견줘 급여가 낮은 공공병원에 근무하면서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진료하는 봉사활동도 수년 동안 해오고 있으며, 단식농성이 벌어지는 현장 등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어떤 이유였든 단식농성을 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을 진료한 의사를 칭찬해 줘도 모자랄 텐데 오히려 ‘신상털기’에 나서다니요? 국정원이나 언론도 모자라 이제 국회의원까지 공문을 보내 괴롭히다뇨? 이 선생님이 근무하는 병원에는 ‘이보라 과장을 바꿔달라’며 폭언을 일삼는 전화까지 온다고 합니다. 혹시 모를 테러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정치인이시지만 20년가량 의사로 일하신 의장님은 사회적 약자를 돕고자 하는 이 선생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선생님이 마음 편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을 포함해 정부 기관이 나서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지금도 노력하고 계시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한이 남지 않도록 특별법 처리에도 힘써주시고요.

이 선생님도 지금까지 해오신 것처럼 자식을 잃은 너무나도 큰 아픔을 가진 ‘유민 아빠’를 비롯해 동부병원을 찾는 환자들 잘 진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고요. 물론 이렇게 부탁하기 전에 잘하리라 믿지만요. 꿋꿋하게도 이 선생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민 아빠’는 잘 회복하고 있다고 알려 왔군요.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