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9.30 18:45 수정 : 2014.09.30 18:45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가? 지난 2월 서울에서 일어난 이른바 ‘세 모녀 사건’이 이를 잘 드러내 준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는 스스로 생을 끝내면서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합쳐 70만원을 남겼다. 그저 착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 세 모녀는 무려 한달에 5만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보험료)를 내야 했다. 이 모녀가 내던 월세와 가족 수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부과됐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조차 수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강동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무려 21억4000만원으로 평가된 부동산 19건을 가진 부자에게 단 한푼의 보험료도 부과되지 않았다. 또 집을 5채 이상 가진 15만8000여명도 보험료가 면제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30여만원의 월세를 내는 집에 살면서 5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고, 그 월세를 받는 어느 누군가는 보험료 한푼 내지 않았다.

소득이 투명하다고 ‘유리지갑’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인들도 보험료 차등은 심각하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 이외의 다른 소득에 대해서는 한해 72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월급에만 보험료가 부과되다 보니, 다른 소득을 통해 수천만원을 벌어도 월급만 같으면 보험료는 똑같다.

이러다 보니 보험료에 ‘이의 있습니다’라는 민원이 건강보험공단에 한해 우리나라 인구만큼 되는 5000만건이 넘게 쏟아진다고 한다. 상황이 이 정도이면 벌써 10년 넘게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정부가 뒷짐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

보험료를 내는 과정만 불공평한가? 그렇지도 않다. 낸 보험료를 돌려받는 결과를 봐도 소득 수준이 높은 이들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혜택을 더 많이 본다. 지난해 건강보험 가입자를 소득 수준에 따라 5등급으로 나눠서 건강보험에서 환자에게 내준 병원 진료비를 보자.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한달에 병원을 이용한 뒤 11만7000원가량을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했다면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는 23만8000원을 지급했다. 보통 가난한 사람이 암 등 각종 질환에 더 많이 걸리는 것으로 통계가 나오지만, 병원 이용만큼은 부자가 더 많이 하고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의 혜택도 더 많이 본 것이다.

이런 데에는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금액 비율이 전체 진료비 가운데 60%대 초반으로 낮기 때문에, 환자가 내야 할 돈이 너무 많아서 가난한 이들은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못 만들어진 보험료 부과 체계 때문에 소득이나 재산에 견줘 상대적으로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이 정작 아플 때는 병원 이용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보험료가 나온 마당에 보험 재정에 보탬이 되는 건강증진기금이 붙어 있는 담뱃값 이야기도 해보자. 만약 세 모녀 가운데 한 사람이 하루에 담배 한갑을 피웠다고 치면, 한갑에 세금을 1550원이나 낸다. 한달이면 4만6000원이다. 정부가 밝힌 대로 담뱃값을 2000원 올리면 세금은 한갑당 3318원으로 커지고, 한달이면 10만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난한 이들이 부자보다 담배를 더 많이 피운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정부가 고소득층의 재산이나 소득을 충실히 평가해 보험료를 제대로 부과하는 개선 노력은 더디 하면서, 저소득층이 중독이 돼 끊기가 어려운 담배에만 세금을 더 붙여,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