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1.11 18:44 수정 : 2014.11.11 20:03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입주자의 거듭된 모욕과 폭언에 시달리다 분신, 사망에 이른 경비원 이만수씨의 죽음을 떠올린다. 그의 죽음이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강남 아파트에서, 갑을 관계의 최하층에 처한 경비원에게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이와 유사한 일은 차고 넘친다.

지난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한 입주자가 입주민 인터넷카페에 경비원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경비원의 월권과 무례에 항의를 하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경비원이 뒤로 약간 넘어졌단다. 60대 경비원은 합의금을 더 받아낼 목적으로 자신을 계속 협박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순식간에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경비원들의 무례와 무사안일을 성토하는 글들로 게시판이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반전. 알고 보니 진상을 부린 것은 입주자 쪽이었던 것. 평소에도 진상 짓을 자주 하던 이 입주자가 이날은 만취 상태에서 경비원을 폭행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가 이사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현재의 아파트 관리 구조에서 경비원은 환경미화원과 함께 저 눅눅한 저지대, 을 중의 을을 구성한다. 이곳에 지금 한국 비정규직의 구조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응축되어 있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경쟁입찰을 통해 관리업체에 관리용역을 주면 이들이 관리사무소가 되어 다시 경쟁입찰을 통해 경비용역업체 소속의 경비원들을 채용한다. 두 단계의 간접고용이다. 환경미화원도 마찬가지다. 용역업체는 최대한 낮은 가격에 입찰하려 하고, 경비원들의 임금은 최저 수준에 수렴한다. 게다가 입주자들의 잦은 민원으로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비정규직 문제 상당수가 불안한 노후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령화 속도에 비해 노후 준비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50대 이상 중장년층,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비원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선택지다. 이들의 노동으로 수많은 자식들의 부양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있다.

말 그대로 ‘늙고 힘없는’ 경비노동자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종의 갑은 수백, 수천의 입주민들이다. 모든 갑들과 마찬가지로 입주민들은 자신의 돈이 이들의 밥을 해결하는 한, 요구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경비, 깨끗한 환경, 친절함까지…. 관리비 부담 때문에 인력은 줄어드는데, 그럴수록 불만은 차고 넘친다. 층간소음 문제, 애완견 짖는 소리 등 이웃 간 분쟁이 생길 때마다 경비원들이 호출되고 대신 야단맞고, 불만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양쪽에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비원의 감정노동은 상당하다.

내일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이 땅의 노동 현실을 고발한 지 44년째가 되는 날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추모하기는 쉽다. 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그를 추념하기 위해 청계천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전태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올해 만 66살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을 하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지금 경비를 서는 이가 전태일이고, 미화원이 그가 지키려 했던 시다들이다. 1970년 전태일은 서울 청계천에서 몸을 불살랐다. 2014년이 되자 국민 60%가 거주하는 전국 방방곡곡의 아파트가 청계천이 되어 있다. 이게 우리 노동의 현대사다. 당신과 나의 아파트가 2014년 11월의 청계천이다.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을이라서 무얼 하지 못한다고 말해왔다면, 이제 솔직해지자. 여기서는 우리가 갑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