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창진아’란 글 제목은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살짝 비튼 것이다. ‘창진아’는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을 가리킨다. 나는 박 사무장과는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결례를 무릅쓰고 ‘창진아’라고 쓴 것은 봉급생활자 선배로서 그에 대한 친밀감과 연대감을 나타내고 싶어서다. 박 사무장이 지난해 12월12일 처음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저 친구, 앞으로 회사 생활 제대로 할 수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다. 대한항공 같은 ‘오너’가 있는 회사에서 박 사무장이 앞으로 어떤 고초를 겪을지 정말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박 사무장은 회사한테서 회유와 인사상 불이익 암시, 정체불명의 ‘지라시’를 통한 비열한 인신공격까지 받아야 했다. 나는 <한겨레>에 들어오기 전 20대 후반에 이른바 ‘오너’가 있는 회사에서 1년가량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그 회사 안에서 오너는 왕처럼 군림했다. 그 회사 선배들은 술자리에선 오너의 전횡을 매섭게 비판하다가도, 막상 오너 앞에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를 읊조리는 ‘지당대신’으로 전락했다. 나는 당시엔 이런 선배들이 참 비겁하고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들만큼 나이를 먹은 요즘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의 옛 회사 선배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밥줄을 쥐고 있는 오너에게 어느 월급쟁이가 지옥으로 갈 각오 없이 대들 수 있겠는가. 40대 초반인 박 사무장은 대한항공에서 18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대한항공 안에서 오너가 어떤 존재이고 ‘회사 밖은 지옥’이란 세상 물정도 알 만한 나이다. 그런 박 사무장이 왜 언론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했을까. 그는 “회사라는 큰 힘에 의해 빼앗긴 개인의 존엄함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개가 아니었지, 사람이었지, 나의 자존감을 다시 찾아야겠다. 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이것은 아니다.” 앞으로 박 사무장이 대한항공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 당권·대권 논란보다 이게 더 궁금하다. 내 주변 봉급생활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비슷했다. 판사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난 19일 ‘땅콩 회항’ 사건 첫 공판에서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오성우)는 직권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30일 열리는 두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조현아 피고인은 언제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창진 사무장은 과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도 재판부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증인채택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병가 중인 박 사무장은 ‘출근은 오너라고 막을 수 없는 개인의 권리’라며 2월1일부터 출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또 자존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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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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