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위쪽, 경의선 철길을 따라 오일장들이 늘어서 있다. 내 즐겨 찾는 단골 어물전, 빈대떡집도 거기, 금촌장에 자리잡고 있다. 장날과 주말이 겹치는 날, 북적대는 시장통을 거닐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근대화와 함께 정기시장이 사라지리라고 예견했다. 서구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예견은 틀렸다.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점원이 영혼이 거세된 감정노동을 하는 동안, 오일장의 어물전 주인은 뾰로통한 얼굴로 오늘은 좋은 물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오늘 덜 팔아도 단골을 놓칠 순 없다는 경제적 계산일 수도, 단골에 대한 인간적 솔직함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장터에서는 영리에도 영혼이 깃든다. 이 경의선 오일장 이곳저곳이 휴장에 들어가고 있다. 당연히 메르스 탓이다.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민생 위기 상황이 심상치 않다. 외환위기 때나 세월호 참사 이후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도 나온다. 오죽하면 여당 대표조차 지금 서민들에게는 메르스 감염보다 생계의 위협이 더 공포스럽다고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무능한 정부를 향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은 퍽 당연하다. 민생 위기의 정치화 조짐은 여론조사 수치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갤럽이 6월 3주차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던 자영업층의 국정수행평가는 긍정평가가 32%로 평균 29%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그쳤다. 부정평가는 62%로 평균 61%보다 오히려 높았다. 자영업층이 대체로 경기에 민감하고 안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높아 보수 여당의 오랜 지지 기반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자영업층의 이반이다. 이전과 비교해 보자.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 평가가 최저치(40%)로 하락하던 작년 7월에도 자영업층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각각 46%, 48%로 반반이었다. 민생을 내세워 세월호 위기를 돌파하려 한 박 대통령의 행보가 적어도 자영업층에서는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올해 2월 연말정산 파동 등으로 박 대통령 평가가 29%까지 추락할 때도 자영업층의 박 대통령 평가는 긍정 33%, 부정 60%로 지금보다는 양호했다. 자영업의 위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자영업으로 표상되는 민생 위기가 정치적 분노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징후는 이명박 정부 중반인 2010년 즈음부터 나타난 바 있다. 민생 위기 속에 그해 6월 지방선거와 10월 재보선에서 보수 여당은 무상급식 등 복지 어젠다를 내세운 야당에 연거푸 참패했다. 화들짝 놀란 보수 여당은 민생을 명분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등의 어젠다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정치 감각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낳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약속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불리하거나 여론이 악화될 때만 민생을 강조했다. 그 와중에 유체이탈 화법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사태를 남의 일인 양 평론하는 기이한 태도를 통해 그녀는 정부와 자신을 ‘성공적으로’ 분리해냈다. 비판자들에게는 코미디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연민이다. 못난 아랫것들 때문에 고생하는 지도자, 그녀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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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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