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29 18:34
수정 : 2015.09.29 18:34
명절이다 보니 오랜만에 친척을 비롯해 친구들을 보게 됐다. 나이 드신 친척분들은 물론 40대 중반에 들어선 친구들도 건강 문제를 화제에 올렸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생활습관병을 앓고 있으면서 ‘약을 타다 먹는다’는 친척이나 친구도 있었고, 맥주를 많이 마셔 통풍에 걸려 소주만 마신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는 술을 줄이라고 했더니, 의사가 맥주만 마시지 말라고 했다며 술을 사실상 목구멍으로 들이붓고 있었다. 피부암에 걸렸는데 민간보험에 가입해 놔서 보험금을 톡톡히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에 아버님이 암수술을 받았는데, 말만 ‘4대 중증질환(암·심장혈관질환·뇌혈관질환·희귀난치성질환) 100% 보장’이지 병원비가 1천만원 가까이 나왔다는 친구도 있었다.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 입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나보고는 의사라서 질병 걱정 없어서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의 결론은 평소 운동 등 건강 생활도 해야 하지만, 노후 대비를 위해 민간보험 하나쯤은 다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모두 가입하고 있었다. 한 친구가 ‘어떤 보험이 좋으냐’고 나에게 묻길래,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민건강보험’이라고 답을 하니 다들 웃었다. ‘의료전문기자가 헛똑똑이’라고 비웃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민간보험의 지급률이라는 어려운 용어까지 들어 설명했다. 보건복지 분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현직 의사인 김종명 선생이 썼던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 마라>라는 책을 보면 민간의료보험의 지급률은 40% 정도다. 100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어떤 질병이 걸렸을 때 보험금으로 40만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에 견줘 건강보험의 지급률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를 보면 소득 수준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했지만, 소득 수준별로 5집단으로 분류했을 때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은 2014년 기준 100만원을 내면 110만원, 소득 하위 20%는 100만원을 내면 510만원의 보험 혜택을 누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건강보험 재정에는 세금에서 일정 정도를, 직장 가입자의 경우 회사가 절반을 부담하기 때문에 낸 보험료보다 많이 돌려받게 돼 있다고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낸 보험료보다 많이 돌려받는다는 말에 조금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전히 건강보험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들이었다. 이 불만족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낸 보험료보다야 많이 돌려받지만 건강보험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질병 치료에 1천만원이 나왔다면 현재 건강보험에 가입됐다고 해도 약 380만원의 병원비를 내야 한다. 한해 1억원이 나오는 중병에 걸렸으면서 몇 해 치료해야 한다면 해마다 3800만원을 몇 년 동안 내야 해 의료비 부담으로 전세금을 내놓거나 집을 팔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강보험공단에 약 17조원의 누적 흑자가 쌓여 역대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보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당장 보험료를 깎아주든지 아니면 병원비를 적게 들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이 가운데 일부가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에 쓰인다 쳐도, 공공병원을 확충하거나 아이들은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돈이라고 주장한다.
|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
절호의 기회다. 현재 쌓여 있는 17조원을 잘 활용하면 국민들의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족을 털어버릴 수 있다. 추석에 고향에서 느꼈던 공동체 정신도 회복할 수 있다. 아픔과 질병은 사회가 함께 나눈다는 그 마음 말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