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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6 18:05 수정 : 2016.10.16 21:21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벨 문학상 존립에 대한 의문도 던져준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이 상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세계 각지의 ‘보석’들을 발굴, 전 세계 대중의 교양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이미 세계적 스타인 밥 딜런 같은 이가 상을 받아서 인류가 얻을 이익이 무엇일까? 앞으로는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읽게 될까? 노벨상의 포용력? 글쎄, 일각에선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의 ‘존립 근거’와 ‘권위’만 높여준 게 아닐까?

존립 논란으로 치면 경제학상도 만만치 않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의 아브너 오퍼와 스웨덴 웁살라대의 가브리엘 쇠데르베리는 <노벨 요소: 경제학상, 사회민주주의, 시장으로의 선회>(프린스턴대출판부, 2016)에서 노벨 경제학상 제정이 스웨덴 내부 정치투쟁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잘 알려졌듯, 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뜻에 따라 제정된 게 아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9년부터 시상하던 것으로, 그 공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잘 자리잡은 나라로, 일찍이 1차대전에서 중립국을 선포해 전쟁의 광풍과 부채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고, 전쟁 뒤 비교적 쉽게 사회민주주의로 이행했다. 2차대전 이후에도 공공주거와 완전고용을 최우선순위에 내세운 사회민주당 정권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등을 이유로 여기 반기를 든다. 오퍼와 쇠데르베리에 따르면, 사민당 정부에 압박받던 중앙은행은 자신을 대변해줄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필요했고, 마침내 사민당 정부도 중앙은행이 기금을 보유할 수 있도록 ‘양보’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기금이 노벨 경제학상 설립에 쓰였다.

노벨 경제학상은 출발부터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이고자 <노벨 요소>의 저자들은 ‘경제학’과 ‘사회민주주의’를 대비시킨다. 즉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상이한 ‘체제’라고 본다면 ‘경제학’이 옹호하는 ‘시장자유주의’는 전자에나 해당하고, 실제로 이제껏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중 ‘사회민주주의’에 속하는 학자는 1974년 군나르 뮈르달뿐이다. 진보 경제학자도 일부 있지만, 결국 그들도 ‘시장적 처방’을 선호하니 말이다. 선진자본주의국들에서 국내총생산의 30% 이상이 사회민주주의적으로 배분되고 있는 현실이 노벨 경제학상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하이에크도 노벨 경제학상에 반대했다는 점이다. 뮈르달과 함께 여섯번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노벨상 환영만찬에서 “노벨 경제학상 제정에 대해 나에게 문의가 들어왔더라면 나는 결단코 거기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개인에게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자연과학에서 노벨상이 그 수상자에게 부여할 권위는 대체로 그 동료 전문가 집단 안에 머물지만, 경제학자의 영향력은 정치인·언론인·공무원·일반대중 등 비전문가들에게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는 것 같다. 지난주 올리버 하트와 벵트 홀름스트룀이 ‘계약이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로 발표되었다. 국내 몇몇 매체는 이 소식을 전하며 그들의 이론을 최근 논란중인 성과연봉제와 연관지었는데, 그중엔 그들의 계약이론이 성과연봉제를 지지한다는 기사와 부정한다는 기사가 함께(!) 있었다. 이런 ‘웃픈’ 일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기도 하거니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가 노벨 경제학상의 권위에 의존해 결정될 일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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