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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1 16:25 수정 : 2019.06.30 19:20

남지은

대중문화팀 기자

2015년 2월, 한 가수 지망생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5년 넘게 회사에서 아이돌 가수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데뷔를 못 했다. 아이돌로 데뷔하기에는 많은 나이인 20대 중반이 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도 해지됐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는 “실력은 있었는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한 배우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대학 때 연기 잘하기로 유명했지만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그들의 부모가 연예인이었다면? 방송국 간부였다면 어땠을까?

최근 불거진 정윤회 아들 캐스팅 특혜 논란을 보며 그들이 떠올랐다. 정우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정윤회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됐다고 알려진다. 본부장과 사장까지 나서서 캐스팅을 종용했다고 한다. 정우식이 ‘아버지 이름’으로 캐스팅됐다는 걸 몰랐다면 그도 피해자다. 차근차근 열심히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든 게 아버지의 힘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충격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도왔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면, 정유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그도 ‘동생’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연예계에 ‘제2의 정우식과 정유라’가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우식 캐스팅 특혜 의혹이 불거진 뒤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배역이 너무 작다는 근거를 든다. 그 정도 배역은 정우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백’으로 투입돼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관계자가 이해관계에 따라 캐스팅 권한을 악용해왔다. 피디, 간부 등 관계자가 내리꽂는 일은 다반사다. 한 피디는 친한 작가가 집필하는 일일드라마에 자기 아들을 조연으로 투입했고, 한 작가는 평소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기로 유명하다. 주인공과 같은 소속사의 배우가 ‘끼워팔기’로 꿰차는 건 다반사다. 캐스팅 디렉터들은 수수료를 더 많이 주는 배우를 꽂아넣고, 자기가 ‘사심’을 가진 여배우를 작품마다 출연시킨 피디도 있다. 노래를 못해도 투자자나 소속사 간부의 딸이면 아이돌 멤버가 될 수 있다.

요즘은 혈연으로 새판이 짜인다. 단역 배우였던 조재현의 딸은 아빠와 함께 예능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한 뒤 여러 드라마에 주·조연급으로 캐스팅됐다. 혼자서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을 때는 연거푸 떨어졌는데, 아빠 손잡고 예능에 나온 뒤부터는 주연까지 꿰찼다. 주연이 된 딸은 하는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모델인 황신혜의 딸은 엄마 손잡고 여러 예능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아빠가 김구라라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티브이에 자주 나왔던 그의 아들은 아빠의 뒷바라지로 힙합 가수까지 됐다. 엄마와 함께 예능에 출연했던 이경실의 아들은 최근 주말드라마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연예인 세습’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2세들의 마지막 보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연·혈연으로 기회를 잡았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기회 불균등은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케이팝스타> <슈퍼스타케이> 등 가수 오디션 프로에 수백만명이 지원하고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려고 매년 수천만명이 도전한다. 배우 오디션에도 많게는 수천명이 몰린다. 누군가는 손쉽게 얻은 그 기회 한번 잡아보겠다고 ‘백’ 없는 그들은 오늘도 땀을 흘린다. 부모의 힘으로 대학도 가고 승마 선수가 된 정유라는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다”라고 했다. 그 말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 분노가 왜 연예계에는 관대한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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