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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6 17:47 수정 : 2018.02.06 19:09

신동명
영남팀장

1970년대와 80년대 가요와 영화로 <고래사냥>이 유행한 적이 있다.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기 전이었지만 노래 가사와 영화 내용에 고래를 잡는 얘기는 없다. 노래와 영화에서 고래는 사냥의 대상이 아닌 기성의 타성이나 일상의 권태, 체제의 억압 등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래가 사냥의 대상이 된 것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유적의 고래와 사냥 장면 바위그림에서 보듯 7000년 전 선사시대부터로 추정된다. 포경선을 이용한 근대적 포경은 1899년 대한제국이 러시아와 함께 울산 장생포에 포경기지를 세우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자행된 남획으로 고래가 멸종 위기에 놓이자 1986년 국제포경규제협약에 의해 상업포경이 전면 금지됐다.

그럼에도 울산에선 지금도 여전히 고래고기를 사고팔며 먹을 수 있다. 인위적으로 고래를 잡는 행위는 불법으로 처벌받지만 다른 어류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는 이른바 ‘혼획’에 대해선 특별히 지정된 보호대상 고래가 아니면 해경이 유통증명서를 발급해 고래(고기)의 제한적인 유통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고래가 바로 식용으로 애용되는 밍크고래다.

혼획된 고래의 유통 허용은 혼획으로 그물 등 어구와 어업에 손실을 입은 어민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고, 포경 금지 전까지 고래 때문에 생업을 이어온 장생포 주민들에게 포경 중단으로 막막해진 생계대책에 숨통을 터주는 구실도 했을 것이다. 한데 혼획을 구실로 고래의 제한적인 유통이 허용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밍크고래 한 마리 경매가격이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호가하자 ‘바다의 로또’로 불리며 다시 혼획을 빙자한 사냥의 유혹을 자극하는 대상이 돼갔다. 혼획을 빙자한 고래의 불법 포획과 유통은 특히 고래고기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5월 울산고래축제를 앞두고 기승을 부린다.

2016년 4월 경찰이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건을 수사하면서 증거물로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는데 이 중 21t을 검찰이 한 달 만에 피고인인 포경·유통업자들에게 되돌려준 일로 울산에선 최근 이른바 ‘검·경의 고래고기 싸움’이 벌어졌다. 검찰이 고래축제를 앞두고 되돌려준 고래고기는 시가 30억원어치로 추산된다. 피고인들은 이를 돌려받기 위해 2억원의 수임료를 주고 울산지검 출신 ‘전관예우’ 변호사를 선임했고, 고래고기를 돌려받는 구실이 됐던 고래유통증명서도 일부 조작된 정황이 드러났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유통업자-변호사-담당검사의 ‘검은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달 9일 청와대 누리집에 청와대가 나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을 제기했다. 이 청원은 8일까지 20만명의 동의를 얻어야 성립하는데 6일 오전 현재 1000명의 동의도 받지 못해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그렇다고 고래고기를 둘러싼 의혹의 진상마저 묻혀선 안 될 일이다.

경찰 수사로든 검찰 자체 조사나 수사로든 진실은 명백히 가려지고 의혹은 해소돼야 한다. 과거 ‘정치검사’에다 최근 잇단 여검사 성추행 파문 등으로 실추된 검찰의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또 고래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의 유통을 전면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혼획된 고래의 유통을 허용해 로또가 되게 하는 한 포경 금지를 통해 고래를 사냥의 대상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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