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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1 18:34 수정 : 2007.11.21 18:34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칼럼

한달 전쯤 <한국방송>의 ‘세계의 공영방송’편에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른 투자가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나와 상호 대담도 하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답하는 프로그램이 한 시간 가까이 방영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아주 자유롭고 진솔한 대화와 토론에 금방 빠져들었다. 보통 재미없는 프로그램이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그날은 꼼짝없이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고 말았다. 흔히 미국 방송을 보면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내보내면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stay with us)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말이 없어도 나는 끝까지 그 프로그램을 지켜본 것이다.

워런 버핏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제도가 너무 부자에게 유리하다”, “부시 정권 아래에서 나 같은 부자는 훨씬 세금을 덜 내게 되었다”, “세금을 훨씬 더 내게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고 열을 올렸다. 자신이 미국에서도 으뜸가는 부자인데도 왜 세금을 더 안 내게 만드냐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또 말했다. “부자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부자가 되는 사회는 미국이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아들에게는 부를 승계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약속이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워런 버핏은 말로만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자기 재단도 아닌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선뜻 헌납해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이 모든 주장에 동의한 빌 게이츠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자본가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많이 번 돈을 좋은 곳에 쓴다면 어찌 로빈 후드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라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자신을 의적 로빈 후드와 비교한 것이다.

로빈 후드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나는 정말 으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최고로 돈을 많이 번 자본가들이 하는 소리가 아닌가. 중세 영국에서 숲 속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산도적 로빈 후드와 비교하면서 자신도 돈을 의롭게 벌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 역시 자기 돈의 절반은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내놓았다. 아마도 그의 언행으로 보면 나머지 재산도 자신의 무덤에 싸가지고 가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청교도 자본주의라는 것에서 시사하듯 자본주의 자체도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두 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익히 알아온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상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의 자본주의, 한국의 자본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금 안 내려 안간힘을 다하고 부정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이권을 챙기고 사회정의에는 나 몰라라 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부정적인 재벌의 모습이 국민에게 부각되었고 분식회계 등으로 몇몇 재벌기업 회장이 구속되거나 아예 도산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문제는 아직도 이 불행한 시대의 유산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삼성 비리의 내부 제보, 아직 진실은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도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라는 삼성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현실을 그대로 상징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세상,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사회를 향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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