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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2 14:12 수정 : 2007.11.22 14:43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2. 호메이니와 시아파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는 1902년 9월 24일 호메인(khomei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호메이니라는 이름도 이 마을 출신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호메이니가 태어난 날은 시아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날은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의 딸이자 제1대 이맘 알리(Ali)의 부인인 파티마(Fatimah)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시아파는 무엇보다도 이맘(Imam)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이맘은 바로 알리와 파티마의 자손을 의미하고 있다. 시아(Shia)는 ‘무리’ 또는 ‘당파’라는 의미이고 알리의 무리(shiat Ali)에서 유래되었다.

이슬람세계는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커다란 분열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망 직후 아랍전통에 따라 부족회의에서는 예언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최고령자인 아부 바크르(Abu Bakr)를 칼리프로 선출했다. 하지만 당시 이슬람공동체는 무하지룬(Muhajirun, 메카의 이주자)과 안사르(Ansar, 메디나의 토착민) 사이에 경쟁관계가 나타나고 있었고 사실상 메카파와 메디나파의 대립구조로 형성되었다. 알리의 추종자인 메디나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고 주장했다. 632년 3월 16일 예언자 무함마드는 마지막 순례에서 돌아오면서 메카와 메디나 사이에 위치한 훔(Khumm) 연못에서 세웠다. 그날 오후 예언자 무함마드는 회의를 소집하여 알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나를 자신의 주인(마울라, mawla)으로 맞이할 이는 누구든지 알리를 자신의 주인으로 맞이하라”고 말했다. 시아파 세계는 이를 가디르 축제(이드 알 카디르, Id al-Ghadir)로 규정하면서 오늘날까지 중요한 종교행사로 거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순니파의 해석은 다르다. 알리는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 가운데 군인들에게 새 의복을 분배하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것에 대해서 심한 비판을 받았다. 순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그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아파는 칼리프위를 알리의 가문에게 돌려주려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알리의 차남 후세인(Hussein)은 680년 10월 10일 이라크의 쿠파(Kufa) 근처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우마이야조 칼리프 야지드(Yazid)의 군대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시아파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고 종교적 상징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시아파에게 그의 죽음에 대한 애석함과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고 복수와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제3대 이맘 후세인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속죄하는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시아파들은 그때부터 해마다 아슈라(Ashura: 이슬람력 1월 10일) 행사를 개최하여 제3대 이맘 후세인의 순교정신을 추모한다. 이는 자신의 조상들이 야지드의 군대에 후세인을 넘긴 것을 속죄하는 것이다. 이 행사에서는 카르발라 전투에서 보여준 제3대 이맘 후세인의 용맹성과 적들의 잔혹함을 묘사한다.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이끈 호메이니.


이맘은 시아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이다. 시아파에서는 창세 후 신의 빛이 매 시기별로 선택받은 자 위에 비추고 그 빛이 알리와 그의 자손들에게 내려온다고 믿는다. 이맘은 누구에게나 양도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이맘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아파는 이슬람세계에서 약 10%를 차지하고 있고 소수파로 알려져 있다. 시아파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다섯 이맘파, 일곱 이맘파 그리고 열두 이맘파.

다섯 이맘파는 자이드파로 알려져 있고 예멘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자이드파는 713년 제4대 이맘 알리 자인 알 아비딘(Ali Zayn al-Abidin)이 사망하자 큰 아들 무함마드 알 바키르(Muhammad al-Baqir) 보다 작은 아들 자이드(Zayd)를 이맘으로 선택했고 다섯 이맘까지만 인정한다. 자이드파는 시아파 가운데 가장 순니파와 가깝다. 자이드파의 교리는 알리 이후 모든 칼리프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순니파와 차이점이 거의 없다. 그들은 이맘이 알리와 그의 자손 가운데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맘이 완전무결성이나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 역할을 지녔다고 보지 않는다.

일곱 이맘파는 이스마일파로 부르고 있고 시아파 가운데 가장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제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Jafar al-Sadiq, 765년 죽음)의 큰 아들 이스마일(Ismail)은 762년에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다. 이에 따라 그의 동생 무사 알 카짐(Musa al-Kazim, 799년 죽음)을 제7대 이맘으로 추대한 것에 반발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스마일의 추종자들은 이맘이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스마일의 아들이 이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마일파를 암살단파로 부르기도 한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론’에서 11세기 이스마일파의 하산 이븐 알 사바(Hasan Ibn al-Sabah)라는 산장의 노인이 다른 모든 교파를 적으로 삼아 ‘더 많이, 더 잔인하게 암살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교리를 내세웠다고 한다. 그는 이스마일파가 인도산 대마잎으로 만든 마취제 ‘하시시’(al-hashishin)를 청년들에게 먹여 자객으로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암살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어새신(assassin)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들이 대마초를 복용했다는 근거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치적 살인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들에게 암살은 일종의 종교적 행동이었고 단검을 사용하여 고위직 인사를 살해한 후 도피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최초의 희생자는 셀죽조의 유명한 재상 니잠 알 물크(Nizam al-Mulk, 1092년 죽음)였다. 니잠 알 물크는 술탄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 1063-1072년 재임)과 그의 아들 말리크 샤(Malki Shah: 1072-1092년 재임)에서 약 50년간 재상으로 재임했다. 그는 이슬람세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열두 이맘파는 시아파의 다수파이자 정통파이며 이마미파(Imami)라고도 부른다. 열두 이맘파는 이란의 국교이고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까지 오늘날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시아파에서 이맘은 비극의 상징이자 저항의 원동력이었다. 마지막 제12대 이맘 마흐디 알 문타자르(al-Mahdi al-Muntazar)을 제외하고 다른 이맘들은 모두 칼에 찔려 숨지거나 독살당해 죽었다. 제12대 이맘은 869년 이라크의 사말라에서 태어났으며 873년에 사라졌다. 시아파에 따르면 제12대 이맘은 아버지의 순교적인 죽음 이후에 이맘이 되었으며 신의 명령으로 은폐되었다고 한다. 제12대 이맘파의 교리는 은폐와 재림의 원리이다. 은폐기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소은폐기(al-ghayba al-sughra)는 873년부터 940년까지 숨은 이맘은 4명의 대리인들에게만 나타나서 그들을 통해서 공동체를 인도했다. 대은폐기(al-ghaybah al-kubra)에서 숨은 이맘은 어떠한 인물과도 접촉이 끊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시아파에서는 제12대 이맘이 죽지 않고 살아있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출현과 함께 압박과 폭정의 시대가 종식되며 정의의 시대가 실현될 것이다. 현재 이슬람혁명 이론가들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12대 이맘이 재림할 때까지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유달승 교수는 1998년 이란 테헤란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9-2000년 하버드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초빙학자로 있었다. 2001-200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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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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