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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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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의 중동이야기] 14. 호메이니와 1963년 봉기-2
이라크 나자프에 있는 아야톨라 하킴(Hakim)은 이번 사태를 우려하면서 호메이니, 샤리아트마다리 그리고 골파예가니에게 나자프로 이주할 것을 권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호메이니는 다른 성직자들과 만나서 논의한 후 정중히 거절하기로 결론내렸다. 호메이니의 답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이주한다면 위대한 이슬람의 중심 콤은 모독과 무신의 나락으로 던져질 것이다. 우리의 형제들은 고통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신학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타오르는 불길은 유지될 것이다. 우리는 신을 피난처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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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에게 답례하는 호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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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이니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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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호메이니는 예정대로 페이지예 신학교로 출발했다. 호메이니가 탄 차량 주위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호메이니를 찬양하며 제3대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애도하는 구호를 외쳤다. 호메이니는 페이지예 신학교에 도착해서 연단 위로 올라갔다. 그는 1300년 전 제3대 이맘 후세인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카르발라 전투에서 전사했다면서 소리쳤다. “무함마드의 종교가 나의 피로 복귀될 수 없다면 나를 칼로 데려가도 좋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샤에게 충고했다. “친애하는 샤여! 부적절한 행위를 중단하시오. 나는 당신이 아버지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소.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 소련 그리고 영국이 우리를 공격했을 때 국민들은 레자 샤가 떠난 것을 기뻐했습니다. 나의 충고를 들으시오. 이스라엘의 충고가 아닌 성직자의 충고를 들으시오. 그들은 당신은 도울 수 없소. 당신은 하루하루 변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달러의 친구들이오. 그들은 종교와 충성심이 없소. 오! 비참한 사람이여” 호메이니는 샤를 우마이야조 칼리프 야지드(Yazid)와 비교했다. 칼리프 야지드는 제3대 이맘 후세인을 죽인 장본인이었고 시아파에서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호메이니의 연설이 끝나자 군중들은 일제히 콤 거리로 뛰어나가서 “현대의 야지드를 쓰러뜨려라!”,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고 큰소리로 외쳐댔다.
테헤란에서는 아침 8시부터 추모행렬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제3대 이맘 후세인의 순교와 페이지예 신학교의 비극을 비교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영국대사관을 지나서 테헤란대학교 앞 부근에 이르자 10만 명의 시위대들이 결집하였다. 그들은 샤 궁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궁전 앞에 도착한 시위대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신이여 호메이니를 구원하소서! 피에 굶주린 적에게 죽음을!” 시위는 그 다음날에도 반복되었다. 테헤란 남부 샤 사원 앞에서 집결한 시위대들은 정오에는 골레스탄 궁전으로 향했다. 마침내 샤는 호메이니의 체포와 무력진압을 지시했다. 하지만 보좌관들은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 “호메이니를 체포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는 무기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를 체포했다가 석방하는 것은 귀찮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샤의 위신을 손상시킬 수 있고 좋지 못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후 6시부터 세파(Sepah)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무력진압이 시작되었다. 전차와 장갑차는 군중들을 향해서 돌진했고 건물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122명이 체포되었다. 테헤란의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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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는 호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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