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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3 20:28 수정 : 2008.01.23 20:34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세상일 중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좋아지는 것이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입시 제도가 그 단적인 예인데, 이리저리 바뀔 때마다 한층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치달려 왔다. 올해의 대학입시가 역사상 최악의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현 입시제도의 문제점은 단지 학생들에게 떠맡겨진 엄청난 부담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감추어진 본고사의 성격이 짙은 논술과 면접은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이라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출제될지 예측할 수 없는 시험에서 수험생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또한 논술과 면접의 채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최악의 입시제도를 가져온 주범이 바로 수능 등급제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들이 수능 등급제에 대한 대항마로 등장시킨 것이 바로 통합논술이다. 그것을 핑계로 이참에 감추어진 본고사나 한번 실시해 보자는 심사였을 것이다. ‘죽음의 삼각형’이라는 현 입시제도는 수능 등급제와 대학의 욕심이 합작해 만들어낸 치졸한 작품이다.

학생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로 도입된 제도가 거꾸로 부담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빚은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참담한 실패는 대학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당국의 어설픔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좋은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대학의 집착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데서 그런 무리수가 나왔던 것이다.

수능 등급제는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입시제도에 극도의 불안정성을 가져왔다. 지금 분위기로는 곧 폐지될 모양인데, 그렇다면 입시제도가 해마다 바뀌는 셈이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쓸데없이 치러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른다. 제대로 정착되지도 못할 입시제도를 도입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정책당국은 아마추어라는 비웃음을 들어도 싸다.

수능 점수 1, 2점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다는 의도는 칭찬해줄 만하다. 다양한 전형자료를 사용해 신입생을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설픈 이상을 밀어붙인 결과 최악의 입시제도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대학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발뺌할지 모르나 그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고매한 이상이라 해도 현실이 이를 수용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현실을 너무 앞서가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참여정부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수능 등급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설익은 진보가 더 큰 반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설익은 진보의 실험이 갖는 가장 큰 위험성은 진보적 이념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만든다는 데 있다. 지난 대선에서 분명히 드러났듯, 이제는 진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진정한 진보와 사이비 진보가 한꺼번에 매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불씨가 영원히 꺼져 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수화의 세찬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꺼진 듯 보이던 진보의 불씨가 서서히 되살아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뼈저린 자기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그 연약한 불씨는 생명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겸허하고 성숙한 진보로 탈바꿈해야만 세상을 밝혀주는 횃불로 환하게 타오를 수 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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